미국 앨라배마 '냉동배아는 사람' 판결에 논쟁 확산
가톨릭·일부 개신교 반대…유대·이슬람·불교 등 허용·장려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체외수정(IVF)으로 만든 냉동 배아를 사람으로 규정한 미국 앨라배마주 대법원 결정의 후폭풍이 거세다.
판사가 자신의 기독교적 신념을 토대로 내린 결정이 종교가 없거나 다른 이들의 삶에 강제력을 행사하는 상황이 예고됐기 때문이다.
톰 파커 앨라배마 대법원장은 냉동 배아가 사람인 태아라서 이를 폐기하면 법적 책임이 뒤따른다고 지난 16일(현지시간) 판결했다.
파커 대법원장은 결정을 뒷받침하려고 구약성경 창세기, 13세기 가톨릭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 17세기 네덜란드 신학자 등을 인용했다.
그는 기독교는 최소한 사람의 생명이 언제 시작하는지에 의견이 완전 일치하고 신은 사람 생명을 끝내는 것을 개인적 모독으로 본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IVF로 나온 수정란, 즉 냉동 배아는 사람이며 이를 없애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끝내는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됐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 내 특정 파벌의 시각으로 이뤄진 결정일 뿐 종교마다 체외수정에 대한 견해가 다르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현지시간) 냉동배아 폐기를 신에 대한 모독으로 보지 않고 체외수정을 허용하는 종교도 많다고 설명했다.
일단 체외수정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기독교에서 많은 것은 사실이다.
가톨릭은 생명이 정자와 난자의 결합(수정)에서 시작된다고 보고 지금도 지속되는 낙태 반대론의 신학적 토대를 만들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은 1987년 훈령 '생명의 선물'(Donum Vitae)을 통해 혼인한 남녀의 성교와 임신·출산을 분리한다는 등 이유로 IVF를 금지했다.
유대교는 전반적으로 IVF에 찬성하고 이 같은 의학적 기술을 통한 출산을 지원하는 입장이다.
이들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세기에 나오는 하느님의 명령, 영혼을 지닌 사람이 된다는 것은 수정 때 결정되는 게 아니라 진행되는 하나의 과정이라는 유대교 신앙을 강조한다.
파커 대법원장이 개인적 신앙의 토대를 둔 감리교를 비롯해 미국 개신교 교파들에서는 IVF에 대한 견해가 다양하다.
연합감리교회(UMC)는 IVF뿐만 아니라 남은 냉동 배아를 연구 목적으로 기증하는 데에도 찬성한다.
그러나 UMC에서 떨어져나와 더 보수적인 자유감리교(FM)로 편입된 파커 대법원장의 교파 프레이저는 IVF에 반대한다.
이들은 생명이 수정에서 시작된다고 믿으며 재생산 기술 때문에 윤리적, 의학적, 법적, 신학적 문제가 무더기로 생겨난다고 주장한다.
보수적인 개신교도 중에서도 IVF를 반대하지 않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복음주의 신도 대다수가 IVF가 도덕적으로 문제 삼을 수 없는 사안이거나 도덕적인 행위라고 답변했다.
IVF에 반대하는 기독교인들은 생명이 수정에서 시작된 것이라는 점을 주장하려고 성경에서 근거를 찾는다.
구약성경 예레미야서에 나오는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신성한 일에 쓰려고 구별)하였다"라는 구절이 가장 많이 인용된다.
그러나 구약성경 탈출기에는 임신한 여성을 공격해 유산시킨 이에게 다른 피해가 없다며 살인에 대한 사형이 아닌 벌금형을 부과했다는 내용이 나와 태아를 사람으로 볼 수 없다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IVF는 1970년대 도입 때부터 수정란 폐기법, 아기 생성의 산업화, 난자나 정자의 기증이 결혼의 유대감에 끼칠 악영향 등을 두고 논란이 거셌다.
많은 종교는 고심 끝에 IVF가 기본적으로 인류의 복리를 증진하는 쪽으로 선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슬람교 주요 지도자들은 IVF를 허가해 이슬람권에서는 지금도 광범위하게 허용되고 있다.
불교, 힌두교, 일부 개신교에서도 IVF가 도입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환영의 목소리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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