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놀라움 이상, 극단주의 경계"…"영국인 12%만 정치 신뢰"
(런던=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 가자지구 전쟁을 둘러싼 논란으로 긴장이 커진 영국에서 팔레스타인을 옹호하는 극좌 성향 인사가 의회에 재입성하면서 정계에 후폭풍이 이어지고 있다.
리시 수낵 총리까지 나서서 극단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했지만, 사회 갈등에 대한 해답을 내놓지 못하는 기성 정치의 위기를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영국근로자당(WPB) 대표인 조지 갤러웨이는 4일(현지시간) 오후 런던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하원의원으로서 업무를 시작했다.
갤러웨이 의원은 지난달 29일 잉글랜드 북부 로치데일 지역 보궐선거에서 득표율 39.7%로 무소속인 지역 사업가 데이비드 툴리(21.3%), 보수당 폴 앨리슨(12%), 노동당 아자르 알리(7.7%)를 제치고 당선됐다.
갤러웨이 의원은 노동당 소속으로 1987년 하원에 입성한 이후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1994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을 만나 "당신의 용기와 힘, 인내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고, 2003년에는 이라크전에 맹렬히 반대하다가 노동당에서 제명됐다.
가자지구에서 전쟁이 시작된 이후에는 팔레스타인을 옹호했으며, 언론의 질의에도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하마스에 대한 비판을 거부했다.
그가 당선 후 첫 연설에서 한 말은 "키어 스타머(노동당 대표), 이 승리는 가자를 위한 것이다"였다.
전통적으로 노동당 텃밭이며 무슬림 유권자 비율이 30%에 달하는 로치데일에서는 노동당 의원의 사망으로 보궐 선거가 치러졌다.
갤러웨이는 노동당의 후보 지지 철회 덕을 봤다. 노동당은 소속 후보가 가자 전쟁에 대해 한 발언이 '반유대주의적'이라며 막판에 지지를 철회했다.
갤러웨이는 선거 기간 스타머 대표를 "이스라엘의 최고 지지자"라고 표현하면서 그 틈을 파고들었다.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 선두에 있던 제1야당 노동당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노동당 후보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의미를 축소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사과했다.
보수당에 밀려 고전하는 보수당의 리시 수낵 총리는 갤러웨이 당선을 반유대주의·이슬람 혐오 등 최근 급증한 극단주의적 위협과 연계해 이례적인 경고를 내놓았다.
수낵 총리는 지난 1일 총리실 밖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10월 7일의 공포를 무시하고, 헤즈볼라를 미화하고 인종차별적인 극우 정당의 전 대표 닉 그리핀의 지지를 받는 후보의 복귀는 놀라움 이상"이라고 우려했다.
갤러웨이 당선은 기성 정당들의 위기를 드러낸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자 전쟁을 둘러싸고 영국 사회 전반에 고조된 긴장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갤러웨이 의원의 압승에 대해 "많은 무슬림 유권자가 이스라엘에 대한 노동당의 입장에 대해 느끼는 분노를 보여줄 뿐 아니라, 총선을 앞두고 기성정치에 대한 깊어지는 좌절감을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영국 정당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는 급락세다.
1일 영국 통계청(ONS)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영국 국민 12%만 정당을 신뢰한다고 답해 2022년 조사 때의 20%보다 크게 낮았다.
2023년 기준 정당 신뢰도 12%는 사법 체계(62%)나 경찰(56%), 행정조직(45%)보다 훨씬 낮은 것이다.
리서치업체 싱크인사이트·스트래티지의 벤 심션 최고경영자(CEO)는 FT에 "대다수 현안에서 양당 중 어디가 더 잘 해결할 것 같은지 질문에 사람들은 점점 '둘 다 아님'이나 '잘 모르겠음'으로 답한다"며 "기존 옵션이 부족할 때 유권자들이 보궐 선거를 좌절감을 표시할 기회로 쓰는 건 놀랍지 않다"고 덧붙였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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