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요청서 도착 순서에 관한 사실관계 뒤집혀
(로마=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몬테네그로 법원이 권도형(32) 테라폼랩스 대표에 대한 미국 인도 결정을 뒤집고 한국 송환을 결정한 데에는 범죄인 인도 요청 순서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몬테네그로 일간지 비예스티에 따르면 권씨의 범죄인 인도 건을 다뤄온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은 7일(현지시간) 권씨의 한국 송환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20일 권씨를 미국으로 인도하기로 결정했던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이 정반대의 결정을 내린 것은 몬테네그로 항소법원이 지난 5일 권씨 측의 항소를 받아들여 미국 인도 결정을 무효로 하고 재심리를 명령한 데 따른 것이다.
항소법원은 당시 "한국과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 순서와 관련한 사실 판단에 명확하고 타당한 근거가 없다"며 "형사소송법 조항의 중대한 위반을 저질렀다"며 판결 이유를 밝혔다.
판결문에 따르면 미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 공문은 지난해 3월 27일, 한국의 공문은 같은 해 3월 28일에 도착했다. 미국의 공문이 하루빨리 도착했지만, 문제는 미국의 공문에는 권씨에 대한 임시 구금을 요청하는 내용만 담겨 있었다는 점이다.
항소법원은 임시 구금을 요청한 미국의 공문을 범죄인 인도 요청으로 간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반면 한국의 공문은 비록 하루 늦게 도착했지만 범죄인 인도 요청서가 첨부돼 있었다.
항소법원은 또한 "한국 법무부는 지난해 3월 24일 영문 이메일로, 3월 26일에는 몬테네그로어 이메일을 통해 권씨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서를 전자 송부했다"고 지적했다.
항소법원은 형사사법공조에 관한 법률 제6조 제2항에 따라 전자 송부된 범죄인 인도 요청서도 일부 조건이 충족될 경우 범죄인 인도 요청으로 간주한다는 점을 들어 고등법원이 이를 고려하지 않은 것은 법률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이 미국보다 더 빨랐다고 판단을 내린 셈인데, 하급심인 고등법원은 그 판단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몬테네그로 정부는 권씨의 미국행을 원한다는 뜻을 직간접적으로 밝혀왔다.
안드레이 밀로비치 몬테네그로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권씨 인도국과 관련해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외정책 파트너"라고 밝히는 등 미국행에 무게를 둬왔다.
한국보다 중형이 예상되는 미국으로 인도되는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던 권씨 측은 자신의 인도국을 결정하는 주체가 법무부 장관이 아닌 법원이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권씨가 범죄인 인도와 관련한 약식 절차에 동의하면서, 항소법원도 권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여 고등법원이 인도국을 직접 결정하라고 명령했다.
권씨 측은 권씨의 국적이 한국인 점 등 법률로만 따지면 법원이 한국 송환을 결정할 것으로 계산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고등법원은 지난달 20일 미국으로 인도를 결정했다.
이에 권씨 측은 다시 한번 항소에 나서 한국의 범죄인 인도 요청 순서가 미국보다 더 앞섰다는 점을 내세워 반전을 이뤄냈다. 결과적으로 현지에서 최대한의 법적인 조력을 받은 권씨가 한국행을 관철한 셈이 됐다.
블룸버그 통신은 권씨의 범죄인 인도 절차와 관련해 법무부 장관이 최종 승인 권한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권씨의 한국행이 확정되려면 법무부 장관의 결정을 기다려봐야 한다.
반면 포드고리차 고등법원의 홍보 책임자인 마리야 라코비치는 블룸버그 통신에 포드고리차 고등검찰청이나 권씨 측이 이번 판결에 항소하지 않는다면 권씨가 이르면 며칠 안에 한국으로 송환될 수 있다고 밝혔다.
changyong@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