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노효동 논설위원 = 지난해 11월8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워싱턴D.C.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 정문 앞. 마지막 자이언트 판다 가족인 메이샹과 톈톈, 그리고 아기판다 샤오치지가 중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배웅해주러 이른 아침부터 나온 '찐팬'들로 가득 메워졌다. "잘 가" "사랑해" "고마웠어" 철문이 열리며 페덱스 트럭 행렬이 오자 팬들은 애인과 이별하는 듯 눈물바람 속에서 작별 인사를 했다. 실시간 캠 조회수가 1억뷰 이상을 기록했던 워싱턴의 판다 가족은 역대 어느 주미 대사보다도 유능한 중국 외교관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었다. 경찰의 호위까지 받으며 덜레스 공항에 도착한 판다 가족은 '자이언트 판다 익스프레스' 전용기에 실려 중국 쓰촨성 청두로 향했다.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 방중 이후 중국이 이 동물원에 판다 한 쌍을 선물한 것을 계기로 시작된 중국의 '판다 외교'가 반세기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러나 넉달여가 흐른 지금 분위기가 반전됐다. 팬들은 판다를 곧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에 흥분해있다.
미국에는 워싱턴D.C. 국립동물원 외에 샌디에이고 동물원, 멤피스 동물원, 애틀랜타 동물원에 걸쳐 한때 15마리의 판다가 있었다. 그러나 중국과의 임대계약이 종료된 판다가 속속 송환되면서 숫자가 크게 줄어들었다. 가장 상징적이었던 워싱턴의 마지막 판다 가족까지 돌아가면서 이제 남은 것은 애틀랜타 동물원의 네 마리다. 이마저도 예정대로 올해 안에 돌려보내면 미국은 '판다 제로' 상태가 된다. "워싱턴기념탑이 하이재킹당한 기분"이라는 글이 SNS에 나도는 등 중국을 성토하는 여론이 비등했고, 급기야 백악관 출입기자 브리핑에서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판다가 미국에 남도록 요청할 수 있느냐는 질문까지 나왔다. 이런 기류는 워싱턴 판다 가족이 중국으로 돌아간 지 일주일이 뒤 미국 샌프란시스코 APEC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 영향을 끼쳤다.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을 마친 시 주석은 재계인사들과 만나 "판다를 보내기 힘들어하는 많은 미국인들, 특히 아이들이 동물원에 배웅나왔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판다 보존을 위해 미국과 계속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분위기가 완전 바뀌었다. 판다를 관리하는 중국 야생동물보호협회는 일단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 동물원과의 협의를 거쳐 여름쯤 판다 암수 한 쌍을 보내기로 했다. 눈물의 작별식이 열렸던 스미스소니언 국립동물원에 판다를 다시 임대하는 방안도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판다 외교에 다시 시동이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판다는 중국 중남부 지역에 서식하는 고유종으로서, 1975년 발효된 워싱턴 조약(CITES)에 따라 멸종위기에 처한 희귀동물로 지정돼있다. 전세계 판다에 대한 소유권을 천명한 중국은 해외 반출하는 모든 판다에 대해 임대계약을 맺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돌려받는 정책을 취하고 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전세계 20개국 26개 동물원에 판다를 임대하고 있다. 이를 외교와 연관 지어 지렛대로 활용하면서 붙여진 명칭이 이른바 판다외교다. 상호우호 증진 명분으로 선물처럼 판다를 임대했다가 관계가 나빠지면 상대국의 임대계약 연장 요청에 응하지 않는 방식으로 회수하고 있다는 비판론이 나온다. 징벌적 판다외교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미국과 유럽 등지의 판다를 일제히 회수하는 정책을 취한 것도 중국을 견제하는 서방 진영에 대한 외교적 불쾌감을 표현하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에 다시 판다를 보내기로 한 것은 강경한 대외노선을 뜻하는 전랑(늑대전사)외교에서 온건·유화 노선으로 외교 기조를 바꾸려는 것이라는 분석을 낳는다. 미국의 반도체 규제와 외국인 투자 급감 등으로 심각해지고 있는 경제난을 타개해보려는 외교적 제스처라는 풀이가 주를 이룬다.
2020년 국내에서 태어난 '1호' 자이언트 판다인 푸바오가 다음 달 3일 중국으로 간다. 중국과 맺은 협약에 따라 만 4세가 되기 전에 짝짓기 적령기가 되는 시기에 맞춰 돌려보내는 것이다. 지난 3일 용인 에버랜드에서 푸바오가 마지막으로 팬들을 만나는 장면은 한국인들의 '푸바오 앓이'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케 했다. 일본도 지난해 2월 5살 암컷 판다 '샹샹'이 우에노 동물원을 떠날 때 많은 시민이 몰려나와 아쉬운 고별인사를 나눴다. 판다를 받았던 세계 주요 동물원에서 눈물의 작별식이 열리는 것을 보면서 과연 중국 판다외교가 진정 성공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멸종위기 종인 판다를 번식 등의 목적으로 원산지로서의 사육환경을 갖춘 중국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판다가 외교적 뉘앙스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취급되는 듯한 인상을 주어서는 곤란하다. 외교적 접근에서 탈피해 판다 자체에 초점을 맞춘 교류와 공동의 학술연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특히 판다는 유대관계가 돈독한 동물이어서 함부로 주고받는 것이 옳지 못하다는 게 동물보호단체의 주장이다. 때마침 상반기 중으로 한일중 3국 간 정상회의가 추진되고 있다고 한다.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가까운 데다 젓가락 문화까지 공유하는 세 나라다. 정치·군사·경제적 굵직한 현안도 좋지만 판다 얘기를 꼭 나눴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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