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국 거리 수천∼수만명 집결…억압·폭력 종식 촉구
유엔 총장 "법적평등까지 300년" 우려…블링컨 "여성 평등해야 사회도 행복"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곳곳에서 기념행사와 시위가 열렸다. 여성 차별 종식과 권리 증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거리마다 세계 여성의 날 상징색인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특히 여성 권리 증진에서 획기적인 법안 처리를 기념한 나라도 있었으나 일부 국가에서는 여성 억압이 여전한데도 안전상 이유로 공개적인 장소에서 마음껏 권리를 외치지 못하기도 했다.
아일랜드에선 성 역할에 관한 구시대적 헌법 조항 개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실시됐고, 일본에선 부부동성 제도 폐지를 요구하는 소송이 제기됐다.
AP,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여성 탄압으로 악명 높은 탈레반 정권이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에서는 곳곳에서 시위가 이어졌다. 여성들은 사적인 공간에서 소규모로 모여 여성들의 교육, 인권, 직업 활동에 대한 제한 해제를 요구했다.
파키스탄에서도 수백명이 거리로 나와 길거리 괴롭힘 및 강제 노동 금지, 여성 의원 증가 등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이란에서는 현재 투옥 중인 노벨평화상 수상 여성 운동가 나르게스 모하마디의 메시지가 전날 전해졌다.
모하마디는 이란과 아프간 정권이 여성에 대한 억압과 지배, 차별을 체계화하고 있다며 '젠더 아파르트헤이트 정권'(gender apartheid)이라고 몰아세우고, 여성 차별·억압을 증폭하고 종교·권위주의 정권에 힘을 실어주는 젠더 아파르트헤이트의 종식을 촉구했다.
아일랜드에서는 가족의 정의와 여성의 권리에 관한 헌법 개정안 2건에 관한 국민투표가 실시됐다.
각각의 개정안은 가족의 정의를 '결혼을 기반으로 한 가족'에서 '지속적인 관계'로 확장하고, 여성의 '가정 내 의무'에 관한 낡은 표현을 고치고 '가족 구성원들의 보살핌'을 인정하는 조항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최근 데이트 폭력 사건이 잇따랐던 이탈리아에서는 로마와 밀라노에서 여성 수천명이 폭력 중단을 요구하며 행진했다. 고대 로마의 경주장인 치르코 마시모에는 최소 1만명이 모여 성폭력 종식을 요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스페인에서도 마드리드, 바르셀로나에서 각각 3만명, 4만명의 여성이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보라색 옷을 입고 나와 거리로 나왔다.
영국 런던에서 시위대는 여성이 시녀처럼 종속된 채 '출산의 도구'로 전락한 디스토피아를 다룬 마거릿 애트우드의 소설 '시녀이야기'의 등장인물로 분장했다. 이들은 이란 여성의 권리를 촉구하는 손팻말을 들었다.
최근 세계 최초로 헌법에 낙태권을 명시한 프랑스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주재하는 기념행사가 열렸다. 그는 "이 약속이 세계 곳곳에서 지켜질 때까지 우리는 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를 비롯해 곳곳에서는 수천명이 거리로 나와 행진했다. 파리에서는 친팔레스타인·친이스라엘 활동가 사이에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에는 최소 3만명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은 "나는 단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고 싶다", "폭력은 상처로 끝나고 무지는 여성 살해로 끝난다"라는 구호가 들린 팻말을 들고 그대로 외쳤다.
일본에서는 6쌍의 부부가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부부성별제' 인정을 요구하며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일본에서는 결혼 후 남편과 아내가 같은 성을 써야 한다. 약 95%는 남자의 성을 선택해 쓰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전날 기념식에서 성평등을 위한 투쟁이 계급차별과 심각한 인권침해에 맞서는 힘든 싸움이 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구테흐스 총장은 아프간 사례 등을 언급하며 "여성의 권리에 대한 전세계 반발이 위협적"이라며 현재의 변화 속도를 볼 때 여성의 법적 평등을 실현하기까지 300년이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워싱턴DC 기념행사에서 "역사는 여성이 안전하고 자유롭고 평등하게 대우받을 때 그들의 지역사회가 행복해진다는 것을 계속해서 보여준다"며 "그들의 나라도 나아졌고 세계도 더 나아졌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여성의 날을 맞아 출산과 양육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을 영상 메시지에서 "모성은 영광스러운 사명"이라며 "당신은 아름다움, 지혜, 관대함, 무엇보다 자연이 부여한 최고의 선물인 아이들을 낳는 능력 덕분에 이 세계를 개선할 힘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저출산 해소를 위해 자녀가 셋 이상인 '대가족'을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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