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은 같으나 다른 해법 모색…'파병 가능성'에 갈등 확산
독, 국방 문제에서 미국 중시…프, 유럽 전략적 주권 강화 노려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3년 차로 접어들면서 유럽의 대표국인 독일과 프랑스의 리더십 싸움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다.
오랫동안 내재해 있던 전략적 차이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서로 다른 해법 모색으로 수면위로 올라오며 긴장이 노출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우크라이나 지원 국제회의 이후 단독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는 것에 대한 합의는 없지만, 어떤 것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어 "오늘 '절대, 절대(안 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과거에는 '탱크는 절대, 비행기는 절대, 장거리 미사일은 절대'라고 말했다"며 "2년 전 이 테이블의 많은 사람이 (우크라이나에) 침낭과 헬멧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던 것을 상기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이는 2022년 1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독일이 우크라이나에 군용헬멧 5천개를 공급하겠다고 말했다가 동맹국들 사이에서 비웃음 산 일을 직접 겨냥한 발언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9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수준을 끌어올리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주저했던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를 겨냥한 신랄한 일침"이라고 지적했다.
숄츠 총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는 마크롱 대통령 발언이 나온 다음 날 "동맹국들 사이에 처음 합의된 내용은 앞으로도 계속 유효하다"며 "유럽 국가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파병되는 군대는 없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숄츠 총리의 이런 발언엔 마크롱 대통령이 비공개로 진행된 토론 내용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에 대한 불쾌감도 포함돼 있다고 르몽드는 분석했다.
실제 독일 측은 "마크롱 대통령은 이 주제에 대한 합의가 없었다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대부분의 관련자가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명했기 때문에 프랑스가 고립됐다는 게 진실"이라고 꼬집었다.
두 국가 정상 간 갈등은 실무진 선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5일 아날레나 베어보크 독일 외무장관은 스테판 세주르네 프랑스 외교장관의 초청으로 파리를 방문해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으나 두 사람은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도 없이 헤어졌다.
당일 체코 프라하를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이 "겁쟁이가 돼서는 안 되는" 순간에 접어들고 있다며 동맹국들을 향해 "역사의 정의와 그에 걸맞은 용기를 보여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자 이번엔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이 "용기가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논의는 필요하지 않다. 그건 우크라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고 마크롱 대통령 발언을 직접 겨냥했다.
르몽드는 독일과 프랑스의 단결력은 전쟁 초기부터 시험대에 올랐다고 짚고 있다.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클라우디아 마요어 국방 전문가는 "숄츠 총리와 마크롱 대통령 모두 전쟁 발발 이후 이번 전쟁이 '역사의 전환점'이라고 주장했지만 완전히 반대되는 결론을 도출했다"고 진단한다.
마요어는 "이 전쟁을 계기로 숄츠 총리는 독일이 국방 문제에 있어서 미국 없이 안된다는 점을 확인했고, 반면 마크롱 대통령에게는 유럽의 전략적 주권을 강화하는 게 더 절실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 숄츠 총리는 과거 전쟁 확대를 우려해 우크라이나에 레오파드 전차 지원을 거부하다 미국이 에이브럼스 탱크 지원을 약속하자 입장을 바꿨다.
프랑스는 독일이 주도하는 '유럽영공방어계획'이 미국과 이스라엘 방산업체에 기반하고 있다며 불만을 드러내 왔다. 프랑스 입장에선 비유럽 동맹국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기보다 유럽이 자체 장비를 개발하는 게 우선순위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이 방위비 지출을 늘리기로 한 것도 프랑코-독일 동맹에 균열을 까져온 요인이라고 르몽드는 분석했다.
복수의 프랑스 소식통은 "전쟁 전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암묵적 분업이 존재했다. 베를린은 경제적 리더십을, 파리는 국제·안보 문제에서 우위를 점했다"며 "독일이 두 분야에 모두 투자하기로 한 것은, 기본적으로 프랑스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런 기 싸움이 내재한 상황이니 마크롱 대통령의 파병 가능성 발언을 둘러싸고 양측의 엇갈린 입장차가 전면에 노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프랑스는 '파병 가능'이라는 '전략적 모호성'을 취하며 러시아에 끊임없이 경고를 보내는 반면, 독일은 크렘린과의 확전을 우려해 굳이 러시아를 자극하는 발언은 피하는 상황이다.
다만 일각에선 양측의 불협화음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싱크탱크 유럽외교협회의 국방전문가 울리케 프랑케는 "프랑스와 독일 간 전략적 비전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며 "전쟁으로 인해 달라진 점은 그때까지 이론적이었던 차이가 서로 다른 정치적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케 연구원은 "그러나 이견을 과도하게 해석해선 안 된다. 파병 문제에 있어 마크롱 대통령도 전투병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며 "이 역시 독일인들에겐 과도한 얘기지만, 두 나라 모두 러시아의 위험에 대해선 전반적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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