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풍맞은 교황 '백기 들 용기' 발언…러는 반색(종합)

입력 2024-03-11 20:35  

역풍맞은 교황 '백기 들 용기' 발언…러는 반색(종합)
젤렌스키, 러와 협상 일축…폴란드 외무 "푸틴에 철군 독려하는 게"
크렘린궁 "푸틴도 협상 해결 선호…우크라가 거부" 맞장구


(서울·모스크바=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최인영 특파원 = 우크라이나에 '백기' 등의 단어를 써서 협상 필요성을 제기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역풍을 맞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일부 유럽 동맹국들은 교황의 발언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반면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도 교황처럼 협상을 선호한다"며 교황을 거들었다.
10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이날 밤 동영상 연설에서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을 격려하며 협상 중재에 관해 언급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2022년) 2월 24일 러시아의 악이 전쟁을 일으켰을 때 모든 우크라이나인은 방어하려고 일어섰다. 기독교, 무슬림(이슬람교도), 유대인들 모두가 그렇다"고 말했다.
또 "군과 함께하는 모든 우크라이나 사제에 감사드린다"며 "그들은 최전방에서 생명과 인류를 보호하고 기도와 대화, 행동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교회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며 "살고자 하는 사람과 당신을 파괴하려는 사람을 사실상 중재하려면 2천500㎞ 떨어진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발언을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드미트로 쿨레바 우크라이나 외무장관도 10일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언급하며 "우리는 다른 어떤 깃발도 올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어 2차 세계대전 당시 파이우스 7세 교황이 독일 나치에 맞서 행동하지 못했다며 "(바티칸은) 과거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고 목숨을 위해 투쟁하는 우크라이나와 그 국민을 지지할 것을 촉구한다"고 적었다.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날 공개된 스위스 공영 방송 RTS와의 인터뷰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향해 협상을 촉구하는 듯한 메시지를 내놨다.
교황은 "상황을 보며 국민을 생각하고 백기를 들고 협상할 용기가 있는 사람이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믿는다"며 "패배하고 일이 잘 풀리지 않는 것을 볼 때 협상할 용기를 갖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협상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이에 폴란드의 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외무장관은 엑스에 "푸틴에게 자국군을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할 용기를 가지라고 독려하는 것이 어떤가?"라며 "그러면 협상할 필요 없이 평화가 당장 돌아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에드가스 린케비치 라트비아 대통령 역시 엑스에 올린 글에서 "악에 맞서 굴복하지 말고 싸워서 물리쳐야 한다"며 "악이 백기를 들고 항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연방하원의 아그네스 스트라크 짐머만 국방위원장은 "우크라이나 피해자들이 백기를 올리기 전에 교황은 잔인한 러시아 가해자에게 죽음과 사탄의 상징인 해적 깃발을 내리라고 강력하고 분명하게 요청해야 한다"며 가톨릭 신자로서 부끄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반면 러시아의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11일 브리핑에서 "교황의 발언에는 많은 맥락이 반영돼 있지만 일반적으로 그 발언의 핵심은 그가 협상을 선호한다는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이어 "푸틴 대통령도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에 열려 있고 그럴 준비가 됐다고 여러 번 말했다"며 "그러나 불행히도 교황의 발언과 우리 쪽에서 반복해 밝혀온 입장은 우크라이나 정권에 가혹하게 거부당했다"고 주장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도 "교황은 서방에 야망을 버리고 잘못을 인정하라고 요구한 것"이라며 교황의 발언을 발판 삼아 서방이 우크라이나를 이용해 러시아를 약화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이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와 만나 재집권하면 우크라이나에 단 한 푼도 지원하지 않을 것이며, 그러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말한 것에 대해 페스코프 대변인은 "어떤 계획인지 분명하지 않다"며 말을 아꼈다.
abbi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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