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중국에 대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동참하라는 미국의 압박에 우리 정부가 어느 정도 보조를 맞출지 고심하고 있다고 한다. 한미관계를 생각하면 미국의 요청을 마냥 뿌리칠 수 없는 노릇이긴 한데 그로 인한 한국 반도체 산업의 영향도 적잖기 때문이다. 미국은 중국의 첨단반도체 제조를 막기 위해 2022년 10월부터 자국 기업에 대해 시행한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에 관련 기술을 보유한 네덜란드, 일본, 독일, 한국 등 동맹국도 참여할 것을 독려해왔다. 한국에는 작년 하반기부터 압박 강도를 높여왔고 지난달에는 두 나라 정부 차원의 관련 협의가 있었다는 소식이다.
이 문제는 한국 반도체 기업에 대한 미국 정부의 보조금과도 맞물려 있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에 근거한 거액의 보조금을 내세워 반도체 기업들의 미국 내 투자를 독려해왔는데 이달 중 주요 기업에 대한 보조금 규모를 확정할 예정이다. 미국 기업인 인텔이 100억 달러 정도의 지원을 받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근 대만의 TSMC가 50억 달러 이상의 보조금을 받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텍사스주에 170억 달러를 투자해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도 보조금 대상인데 그 규모가 수십억 달러일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이런 미국 정부의 보조금 공세에 중국도 대규모 투자로 맞서고 있다. 이달 8일 블룸버그 통신은 중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270억 달러 이상 규모의 투자 펀드 조성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미·중 간 반도체 패권전쟁이 격화될수록 미국은 대중국 포위망을 더 촘촘하게 하기 위해 동맹국들의 동참을 더욱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산업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고려할 때 한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참여는 시간문제일 수 있다. 미국의 압박을 최대한 피하면서 중국 시장을 고려하고 우리 장비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범위에서 미국과 합리적인 절충점을 찾아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참석차 방미 중인 정인교 통상교섭본부장은 12일(현지시간) "(수출)통제 수준이 어느 정도로 어떻게 바뀌고 할 것인가는 (미국이) 우리와 긴밀하게 협의해서 결정을 서로 해야 하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반도체는 생산과 수출, 투자 등에서 한국 경제 성장을 견인하는 대표적인 산업이다. 수출만 봐도 전체의 15.6%(2023년)를 차지한다. 세계 주요국들이 벌이고 있는 '반도체 전쟁'에 사활을 걸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미국 주도의 세계 반도체 공급망 재편은 한국에 분명 큰 도전이지만 미국의 대중 제재가 중국 시장을 감안하면 반도체산업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최선의 대응책은 우리 반도체 산업의 기술력을 키워 경쟁력 우위를 확고히 해나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일본에서 TSMC 구마모토 공장이 초단기 공기인 착공 1년 10개월 만에 준공된 것에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관련 규제 개혁과 세제·금융 지원에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모아야 하고, 기업은 기업대로 기술개발과 투자에 더욱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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