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동서독 분단 시절 서베를린으로 넘어가려던 폴란드인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옛 동독 비밀경찰 요원이 50년 만에 법정에 섰다.
쥐트도이체차이퉁(SZ) 등 독일 언론에 따르면 베를린지방법원은 14일(현지시간) 살인 혐의로 기소된 만프레트 M.(80)의 첫 공판을 열었다.
그는 동독 국가안보부(MfS·슈타지) 중위로 일하던 1974년 3월29일 베를린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에서 폴란드인 체스와프 쿠쿠치카(당시 38세)에게 총격을 가해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만프레트 M.은 이날 재판에서 변호인을 통해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당시 베를린은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을 기준으로 동서로 나뉘어 있었다. 이 역에는 검문소가 설치돼 슈타지가 이동을 엄격히 통제했다. 동독 시민뿐 아니라 공산권이었던 폴란드 시민도 여행의 자유가 없었다.
소방관이었던 쿠쿠치카는 사망하기 이전 서베를린으로 건너가기 위해 동독 주재 폴란드 대사관을 폭파하겠다고 위협했다. 독일 검찰은 슈타지가 쿠쿠치카를 '무력화'하기 위해 출국 허가를 허위로 내줬고, 만프레트 M.이 잠복해 있다가 2m 뒤에서 등을 조준 사격해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독일은 통일 이후 옛 슈타지 요원들의 범죄를 대거 처벌했으나 쿠쿠치카 사망 사건은 미궁에 빠져 있었다. 수사당국은 부검 결과 보고서와 슈타지 문건 등을 토대로 용의자를 추적해 지난해 10월 만프레트 M.을 재판에 넘겼다.
검찰은 서독 헤센주에서 동베를린으로 수학여행을 갔다가 사건을 목격한 당시 고교생을 찾아 증인으로 불렀다. 마르티나 S.(65)는 이날 법정에서 "남자가 지하도로 몇 미터 들어가자 어두운색 코트를 입은 한 남자가 왼쪽 뒤에서 다가갔다. 총성이 울리고 여행용 가방을 든 남자가 쓰러졌다"며 "그 뒤로 몇 주 동안 꿈에 나왔다"고 진술했다.
재판부는 여섯 차례 더 공판을 연 뒤 5월23일 선고할 계획이다.
dad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