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주재 러 대사관 앞서 '정오 시위' 참여…"투표용지에 나발니 이름 적었다"
나발니 독극물 중독 치료받은 곳…WP "獨, 우크라전 이후 반푸틴 시위 중심지로"
(런던·서울=연합뉴스) 김지연 특파원 유한주 기자 = 지난달 옥중 사망한 러시아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가 러시아 대통령 선거 마지막 날인 17일(현지시간) 투표용지에 남편 이름을 적었다고 밝혔다.
나발니의 지지층은 독일 등에 마련된 투표소 앞에서 나발나야를 연호하며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을 규탄하고,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거나 무효표를 만들어 러시아 정부에 대한 항의를 표출했다.
AFP·AP 통신,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나발나야는 이날 독일 베를린 주재 러시아 대사관에서 '푸틴에 저항하는 정오' 투표 시위에 참여했다.
투표를 마친 나발나야는 투표소에서 나와 앞에 모인 취재진과 지지자들에게 "와서 줄을 서 준 모두에게 감사하다"며 "물론 나는 나발니의 이름을 적었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을 향한 메시지가 있는지 질문이 나오자 나발나야는 "메시지는 그만 물어 달라"며 "그는 살인자이고 깡패이므로 그와는 협상도 무엇도 있을 수 없다"고 답했다.
이날 나발나야가 대사관 앞에 늘어선 줄에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지지층은 그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반(反)푸틴 포스터를 든 젊은 러시아인들은 "율리아, 우리는 당신과 함께한다. 포기하지 말라"고 외쳤다.
독일 남부에서 러시아 대사관까지 몇 시간을 운전해 왔다는 러시아인 여성 다이애나(31)는 "푸틴 정부는 공격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러시아인이라고 해서 푸틴과 같은 것이 아닌데도 우리나라 전체가 살인자들과 동일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대사관 앞에서는 석유 재벌 출신의 망명한 반정부 인사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를 비롯한 야당 인사들이 푸틴 대통령을 비판하는 연설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들은 베를린이 망명한 러시아 인사들의 중심지가 됐다고도 강조했다.
WP도 독일이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후 반푸틴 시위의 중심지가 됐다고 짚었다.
독일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러시아 제재에 참여하고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해왔다.
지난해에는 러시아에 독일 주재 영사관 5곳 중 4곳을 연내 폐쇄하라고 통보했다.
이는 러시아가 자국 주재 독일 공관과 문화기관 직원 규모를 제한하겠다고 통보한 데 대한 대응이었다.
나발니가 2020년 독극물 중독 증세를 보였을 때 치료를 적극 지원한 것도 독일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나발니 가족에게 그가 독일에서 치료받을 것을 권장했고 나발니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자 병원으로 그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이날 베를린 주재 러시아 대사관 인근에서는 50∼60대 러시아인 남녀로 구성된 무리가 러시아 국기를 들고 국가를 부르며 푸틴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이들은 푸틴 대통령을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푸틴은) 나토로부터 러시아를 지키고 있다"고 답했다.
한 60대 여성은 "나는 러시아 편"이라며 푸틴 대통령에게 투표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난 15일부터 진행된 러시아 대선에서 푸틴 대통령은 사상 최고의 득표율로 5선이 확실해졌다. 반정부 성향 인사들은 후보 등록이 거부됐고, 등록된 나머지 대선 후보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러시아 선관위에 따르면 초기 개표 결과 푸틴 대통령은 88% 득표율을 보인다.
나발니의 최측근인 레오니트 볼코프는 이날 텔레그램에 "푸틴의 득표율은 현실과 아주 조금의 관계도 없다"며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볼코프는 최근 망명지인 리투아니아에서 정체불명의 괴한들로부터 심한 폭행을 당한 바 있다.
cheror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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