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업 민영화·공무원 감원 등 '개혁 밀어 붙이기'…노조 반발만 키워
의회 협의 없이 일방적 입법 추진하다 제동…둔화에도 연간 인플레 276%
10여년만에 연속 두 달 재정 흑자 '성과 부각'…주민 고통은 '현재진행형'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극심한 경제난과 치솟는 빈곤율로 신음하는 아르헨티나에서 "썩은 병폐를 도려내고 19세기 말의 번영을 되찾겠다"며 야심 차게 국정 운영을 시작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로 취임 100일을 맞는다.
지난해 12월 10일 정부 출범 후 밀레이 대통령은 경제적 어려움의 근본 원인을 좌파 페론주의(후안 도밍고 페론 전 대통령을 계승한 정치 이념)에 돌리며 이를 호되게 비판하고 급진적 개혁안을 불도저처럼 밀어 붙여 큰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사회적 합의 절차 없는 일방통행 정책 추진은 노조 총파업으로 대변되는 국민적 저항에 부딪혔고, 여소야대라는 정치적 지형 속에 협치의 부재로 말미암아 각종 개혁안은 의회 문턱을 넘지 못해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다.
밀레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 아르헨티나 페소의 50% 이상 평가절하, 전 정권의 생필품 가격 억제 정책 폐지, 각종 개혁 조치와 관련된 총 366개 조항에 이르는 '메가 대통령령' 발표, 총 664조항으로 이뤄진 일명 '옴니버스 법안' 국회 제출, 정부 예산 국내총생산의 5% 긴축 등 숨을 쉴 새도 없이 개혁의 페달을 밟았다.
라나시온과 암비토 등 현지 언론 매체들은 대통령실에서 내놓은 특정 정책에 대한 기대 효과와 부작용 등에 대한 분석을 내놓을 틈도 없이 새로운 또 다른 정책에 직면하는 등 잇따라 몰아치는 밀레이발(發) 개혁에 숨이 가빴다.
공기업 민영화 방지 규제 철폐, 공무원 5천여명 감원, 보조금 축소 등 정부 지출 삭감, 임대료 제한 폐지, 고용 의무 없는 근로자 수습 기간 연장 등 국민 일상생활에 직결되는 부분도 한꺼번에 포함됐는데, 이를 두고 일간지 클라린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아무런 설명 없이 잇따라 나온 대통령실의 기습적인 개혁안 발표에 다수의 시민들은 인내하며 정부를 믿고 따르기보다 저항이 앞섰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들은 한밤중 냄비를 시끄럽게 두드리는 특유의 시위를 벌이며 개혁에 저항했고, 노조는 5년 만의 총파업을 조직하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국민들은 "모든 조정 비용을 카스타(기성 정치인, 기득권)가 지불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내고 있다"며, 밀레이 대통령의 국정 기조를 정면으로 부정하기도 했다.
국민들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든 상황에서 공공요금은 되레 줄줄이 인상됐다는 게 그 배경인데, 이는 "서민에게만 고통 분담을 강요한다"는 집회 참가자들의 불만과도 맞닿아 있다.
여소야대로 꾸려진 의회 역시 밀레이 정부를 돕기보다 반기를 들고 나섰다.
밀레이 정부의 각종 개혁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에도 불구하고 의회와 협의없이 발표되고 제출된 '메가 대통령령'과 '옴니버스 법안'은 의회 상·하원을 통과하지 못하면서 현재 표류 중이다.
특히 옴니버스 법안은 300여개의 조항이 삭제되었음에도 하원에서 개별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고, 메가 대통령령은 상원에서 막힌 상태다.
주 정부와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
연방 정부가 주 정부에 배분해야 하는 일종의 지방교부세 개념의 재원이 제때 나눠지지 않으면서 특히 야당 소속 주지사들과의 대립이 심화하는 양상이다.
사회 각 분야에서 갈등이 표면화하는 가운데 2월 연간 물가 상승률은 276.2%로, 밀레이 취임 직전인 지난해 11월 160.9%와 비교해도 여전히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다만, 월간 물가 상승률의 경우 2023년 12월 25.5%에 이어 지난 1월 20.6%와 2월 13.2%로 둔화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내세울 개혁의 성과물로 꼽힌다.
또 "정부 재정 균형화는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면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강한 긴축 재정 추진을 통해, 1월과 2월 재정 흑자를 기록했다. 아르헨티나에서 2개월 연속 재정 흑자는 10여 년만의 일이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이를 부각하며 "우리는 바른길을 가고 있다"(루이스 카푸토 경제장관)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돌아서는 민심을 잡기 위한 노력 없이는 경제난 극복의 먼 길을 가는 동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설들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현지 매체 '파히나12'는 지난달 25일 밀레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여론조사(CEOP에서 실시)에 대한 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부정 평가는 54%로, 긍정 평가 46%를 넘어섰다"며 "이는 취임 직후 긍정 평가 61%와 비교해도 눈에 띄는 수치 변화"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그러면서 "1983년 이래로 100일 취임 전 긍정적 여론이 15%포인트 깎인 대통령은 밀레이 외엔 없었다"고 덧붙였다.
밀레이 대통령은 최근엔 자신을 포함한 각료 월급을 대폭 인상하는 안에 서명했다가, 여론의 호된 비판을 받고 부랴부랴 이를 취소하기도 했다.
walde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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