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위협 카드 들고 서방과 대립각, 균열에 전력할 듯…美대선 중대변수
푸틴 '최상 시나리오'는 트럼프 재선, 난관 해소엔 역부족 시선도
"러시아인, 푸틴이 미래 빼앗았다고 봐…5∼10년내 문제 가시화 가능성"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현대판 '차르'(황제)로 불리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대선에서 압승함에 따라 향후 6년에 걸쳐 5기 집권플랜을 펼치게 됐다.
지난 15일부터 사흘간 진행된 대선을 앞두고 푸틴 대통령은 갈수록 인기 없는 주제가 돼 온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한 언급을 줄이고, 사회복지 강화 등 민생 메시지에 초점을 맞추는 모습을 보여왔다.
기록적인 득표율을 발판으로 국내적으로는 경제에 집중하면서 내부 동요를 차단하는데 주력하는 한편 국제적으로는 미국 주도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를 중심축으로 한 서방과의 대립각을 키우며 신냉전의 기치를 높여갈 공산이 커 보인다 .
3년째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방의 고강도 경제제재, 언제 비등점으로 치달을지 모르는 국내 여론이란 삼박자에서 비롯되는 문제는 이런 행보만으로 억누를 수 있는게 아니라는 지적도 나왔다.
◇ 민생 개선 약속, 나발니 언급하며 통합 시도…경제 계속 버틸지는 의문부호
미국 시사주간 뉴스위크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승리한다면 본인의 임기 중 러시아인의 기대수명(2020년 기준 71.34세)을 78세까지 늘리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위해 1조 루블(약 14조4천억원)을 들여 병원을 짓고 학교와 유치원을 늘리는데도 4천억 루블(약 5조8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지만, 전쟁 여파로 국방지출이 급증한 현실을 고려할 때 장담한 만큼 성과를 낼 수 있을지 불투명한 실정이다.
러시아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미냐일로는 "2024년은 소련 이후 처음으로 국방·경찰 예산이 (국가예산의 3분의 1을 차지해) 사회예산을 넘어서는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2022년 2월 러시아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이 가한 유례 없는 수준의 고강도 경제제재도 러시아 입장에선 문제다.
러시아는 중국과 인도 등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은 국가들에 러시아산 원유와 천연가스 등을 수출해 급한 불을 껐고 작년에는 소폭의 경제성장까지 기록했지만, 자국의 자원을 헐값에 팔아넘겨야 하는 상황 자체를 타개하지는 못하고 있다.
러시아 경제의 대중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면서 자칫 중국에 에너지 지원과 원자재를 공급하는 일종의 '경제 식민지'(economic colony)로 전락할 위험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푸틴 대통령은 당선 직후 지난달 16일 시베리아 감옥에서 옥중 의문사한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의 사망에 대해서도 한 달간의 침묵을 깨고 "슬픈 일"이라고 처음 언급하는가 하면 '통합'을 언급하며 내부 결속을 시도했다.
◇ 핵전쟁 위협하며 서방 분열 전력…최대 변수는 美대선
푸틴 대통령은 밖으로는 외교적·군사적 고립 타개를 위해 서방을 분열시키는데 더욱 고삐를 죌 것으로 보인다.
그는 당선 직후 '누구도 원치 않는 시나리오'라는 전제로 러시아와 미국 주도 나토 동맹의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난다면 세계 3차대전에서 근접하게 될 것이라며 서방을 향해 경고장을 날렸다.
그는 13일 공개된 리아 노보스티 통신 인터뷰에서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쓸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서방 전문가들은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체 영토의 20%를 점령한 현 상황을 유지하면서, 서방의 '약한 고리'로 평가되는 헝가리 등 친러 성향 국가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하는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와 맞물려 우크라이나 전쟁은 장기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미국 외교관 출신으로 미 국방부 정책고문으로 활동했던 미에텍 보두진스키는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큰 만큼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역을 가지려 들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면서 "그보다는 우크라이나를 분단되고 허약해 나토나 유럽연합(EU) 가입이 힘든 상태로 놓아두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방을 겨냥한 사이버 공격과 정보전에 더욱 박차를 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당장 가장 큰 변수는 올해 11월로 다가온 차기 미국 대선 결과가 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미 콜로라도 광업대학의 켄 오스굿 교수는 "가장 크고 중대한 와일드카드는 2024년 미국 대선에서 벌어질 일"이라면서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빠른 종전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이 원조를 철회하고 우크라이나에 (휴전) 협상을 압박한다면 이는 푸틴의 승리를 의미할 것"이라면서 "비록 현재 점령 중인 영토만 갖게 되더라도 푸틴은 이걸 승리라고 확실하게 주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푸틴 대통령 입장에선 최선의 시나리오일 수 있다. 문제는 설령 그런 결과가 나온다고 해도 러시아가 직면한 국내외적 난관이 본질적으로 해소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 "러 국민, 미래 뺏겼다…갈수록 암울한 나라 될 것"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러시아·유라시아 프로그램 연구원인 존 로프는 이번 대선으로 연장된 푸틴의 임기 6년간 러시아가 '갈수록 암울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많은 러시아인은 푸틴이 그들의 미래를 빼앗았다고 본다. 푸틴이 파고 러시아가 빠진 구덩이의 모습이 앞으로 5∼10년 사이 더욱 명확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이 유럽에서 발을 빼면서 나토가 약화하더라도 이미 국제사회에서 '왕따' 신세가 된 러시아의 처지가 크게 바뀌거나 민생이 개선될 가능성은 없다는 이유에서다.
우크라이나에서의 전쟁이 끝나면 그간 눌려 있던 국민의 불만이 비로소 고개를 들기 시작할 수도 있다. 푸틴의 5기 집권이 더욱 강력한 검열과 사상 통제로 점철될 것이라고 서방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이유다.
당장은 우세를 점하고 있지만 최근 우크라이나 동부 격전지 아우디이우카를 점령하는 과정에서 러시아군 병사 수만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지는 등 이번 전쟁으로 막대한 수의 젊은이가 죽거나 불구가 된 점도 문제다.
미 시카고대학의 콘스탄틴 소닌 교수는 "(아우디우카 같은 상황이) 다섯번만 더 벌어진다면, 이미 극심한 수준인 러시아 사회의 부담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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