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이름 부른 적 없어…지난달 옥중 사망에도 무반응
"감옥에서 종종 사망" 의미부여 피해…나발나야 해외체류 비판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이번 러시아 대선에서 가장 눈길을 끈 장면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압승을 확인한 뒤 반정부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의 이름을 처음으로 부르며 "슬픈 일"이라고 말한 순간이었다.
그간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야권 지도자이자 자신의 정적으로도 꼽혔던 나발니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을 만큼 철저히 회피했던 탓이다.
그러던 그가 17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에서 87%라는 압도적인 득표율로 승리를 확인한 늦은 밤 선거본부에서 연설하면서 "나발니 씨"라며 이름을 직접 부르자 비상한 관심이 모였다.
이전까지 푸틴 대통령은 10년간 자신을 비롯한 러시아 체제를 나발니를 '블로거', '그 사람', '당신이 언급하는 그 인물' 등으로 칭했을 뿐이다.
나발니가 지난달 16일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사망했을 때는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추모가 이어지고 러시아 정권이 죽음의 배후라는 비판까지 나왔지만 푸틴 대통령은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기록적인 득표율로 정권 연장이 확정되자 비로소 푸틴 대통령은 나발니에 대해 "그는 세상을 떠났다. 이것은 항상 슬픈 일이다"라고 말했다.
수감자가 감옥에서 숨지는 것이 "종종 있는 일"이라며 나발니의 사망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았으나 언급 자체로 큰 변화였다.
푸틴 대통령은 또 나발니를 생전에 석방하는 안에 동의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서방 국가에 수감된 러시아인과 나발니를 교환하자는 제안이 있었다면서 "나는 동의한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교환 뒤 나발니는 다시 돌아오지 않고 거기(유럽)에 있어야 한다는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푸틴 대통령의 태도는 그의 개방성을 보여준다"며 "그는 정말로 이 일(수감자 교환)을 할 준비가 돼 있었다"고 강조했다.
나발니의 이름과 사망을 직접 언급한 것은 압도적 당선이 확정된 만큼 그의 죽음으로 촉발된 국내외 비판 여론을 달래고 포용하는 모습을 과시해 국민 결집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로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푸틴 대통령이 나발니의 영향력을 인정한 것은 아니다.
나발니의 지지자들이 푸틴 대통령에 대한 반대 의지를 보여주자며 촉구한 17일 정오 투표 시위에 대해선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며 평가절하했다.
나발니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도 17일 정오 독일 베를린 주재 러시아대사관 앞에 줄을 서며 직접 시위에 참여했다. 나발니 지지자들은 이처럼 해외 투표소 앞에도 정오에 긴 줄이 형성돼 현 정권에 대한 저항이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러시아 외무부는 단순히 투표하러 많은 유권자가 모인 것이라며 다른 해석을 했다. 마리야 자하로바 외무부 대변인은 올해 해외에서 투표한 유권자가 37만여명이라며 "전례 없는 숫자"라고 말했다.
페스코프 대변인은 독일에 머무는 나발나야에 대해 "그는 러시아에서 남편을 볼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는데 해외에 머무는 것을 선호했다. 왜 그랬을까"라며 은근히 비판하기도 했다.
또 "고국에서 완전히 멀어진 사람이 있다"며 "나발나야는 점점 뿌리를 잃고 고국의 맥박을 느끼지 못하는 부류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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