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호품 일부러 막았다면 명백한 전쟁법 위반
제노사이드 혐의 ICJ 제소 이어 법적 부담 눈덩이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 중인 가자지구에 고의적으로 굶주림을 불렀다는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속속 나오면서 이스라엘이 전쟁범죄 혐의로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이 2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미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제노사이드(특정 집단을 말살하려는 고의적 정책) 혐의로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된 이스라엘은 최근 커지는 법적 부담에 대응하기 위해 수십명의 변호인단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도 전해졌다.
가자지구 전역의 주민들은 긴 전쟁과 봉쇄로 인해 사실상 인구 전체가 극심한 기아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앞서 유엔은 이달 중순부터 올해 7월 중순까지 가자지구 주민 절반이 넘는 약 110만7천명이 재앙적 굶주림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가자지구 내 인구 전체에 해당하는 200만명이 "심각한 수준의 식량 불안"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구호품 반입을 막아 기아를 의도적으로 초래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이는 논쟁의 여지가 거의 없는 명백한 전쟁범죄에 해당한다.
공습이나 특정 공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에 대해서는 국제법상 분쟁 필요성이나 공격 비례성 등을 따져 전쟁범죄 여부를 판단하게 되어있는 반면 기아에 대한 전쟁범죄는 비교적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쟁범죄를 규율하는 상설법정인 국제형사재판소(ICC)는 "구호물자를 고의로 막는 것"을 무력분쟁과 관련한 국제인도법(전쟁법) 위반으로 간주한다.
민간인들의 생존에 꼭 필요한 물품을 빼앗음으로써 민간인을 고의로 굶주리게 하는 것도 전쟁범죄로 규정한다.
이스라엘은 국제인도법의 토대가 되는 제네바 협약 조항에 따라 가자지구에 대한 점령국으로서 주민의 식량 및 의료 공급을 보장할 법적 책임을 지고 있기도 하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의도적으로 기아를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 굶주림을 무기로 삼는다는 주장을 계속해서 부인해왔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구호품 반입을 막고 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조사 결과가 계속 나왔다.
유엔의 식량 위기 조사 기구인 통합식량안보단계(IPC) 위원회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가자지구 식량 반입 추이를 조사한 결과 "매우 제한된 수의 구호 트럭만이 가자지구 북부와 가자지구에 들어가도록 승인받았으며, 올해 2월 5일 이후로는 가자시티에 식량 트럭이 들어간 기록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국제구호개발기구 옥스팜 아메리카와 인권기구 휴먼라이츠워치 역시 최근 미국 조 바이든 행정부에도 전달된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이 기아 위험이 가장 극심한 가자지구 북부에 남아있는 팔레스타인인 30만명"에게 구호 물품이 전달되는 것을 체계적으로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옥스팜과 휴먼라이츠워치는 올해 들어 첫 6주간 "가자지구 북부로 향하는 인도적 지원 계획 중 절반 이상이 이스라엘 당국에 의해 방해받았다"며 이스라엘이 고의적인 기아 전략을 펼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국제사회 여론이 계속 악화하자 이스라엘군 내부에서도 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이스라엘군 관리는 최근 이스라엘 일간 예디오스 아로노스에 "이스라엘을 향한 국제사회의 법적 압박은 이번 전쟁 이전부터도 점차 커졌다"며 "이제 남아프리카공화국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이스라엘군을 향한 법적 행동에 나서려는 다른 국가들로부터 그 압력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wisefoo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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