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은 이들 증언 "테러범들 '산책 나온 듯' 침착하게 총격"
화장실·비상계단서도 무더기 시신…아이 꼭 안은 채 죽은 엄마도
(서울=연합뉴스) 김연숙 기자 = 22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 대형 공연장에서 발생한 테러 현장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이 속속 전해지고 있다.
7천명에 달하는 인파가 모인 러시아 록밴드 '피크닉'의 콘서트장에 들이닥친 테러범들은 무차별적으로 총을 난사했고, 콘서트를 보러온 관객들은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당시 아내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안드레이(58)는 23일 영국 일간 더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테러범들이 '침착한' 모습으로 혼비백산한 관객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퍼부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테러범이 '산책하러 나온 것처럼' 공연장 로비를 조용히 걸어 다니며 총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사람들이 공연장으로 몸을 피하자 따라들어와 사격을 계속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들은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자신감 있고 침착하게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쏘면서 복도를 걸어갔다"며 "산책을 나온 듯이 걸으며 총격을 가했다. 한명은 탄약이 떨어지자 멈추더니 침착하게 탄약을 교체했다"고 말했다.
2층 카페에 있었던 안드레이 부부는 2층 기둥 뒤에 숨었고 "그들이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지 않기를 기도했다"고 했다.
직원들이 무대 옆 비상구를 열어 사람들을 공연장 안으로 안내했지만, 테러범들까지 따라들어온 게 문제였다. 총성이 계속됐고 두번의 폭발음이 들리더니 갈색 연기가 피어올랐다. 누군가는 "불이야"라고 외쳤고,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녔다. 이 부부는 다행히 주차장으로 몸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한 10대 소녀는 러시아 국영 통신사 RT에 "그들이 우릴 봤다. 한명이 돌아와 사람들에게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나는 바닥에 엎드렸고 죽은 척 했다. 피를 흘리고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는 테러범이 바닥에 쓰러진 시신들을 향해서도 총격을 가했다며 "내 옆에 누워있던 여자아이는 죽었다"고 전했다.
이번 공연은 콘서트 시작 몇 분 전에 발생했다. 많은 이들이 처음엔 총소리가 쇼의 일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아리나(27)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듣고 콘서트의 일부인 줄 알았다"며 "그러나 어느 순간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고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복으로 위장한 남성이 자동소총을 들고 콘서트장에 들어오는 것을 봤다. 사람들 모두 바닥에 누워 있었고, 옆에는 다친 사람들이 피범벅이 돼 있었다고 아리아는 전했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올리야 무라비요카(38)는 당시 남편과 맥주를 사기 위해 줄을 서던 중이었다. 그는 공연 시작 5분 전 갑자기 총성이 들렸다며 "아마도 밴드가 극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곧 남편이 도망쳐 숨으라고 말했고, 다행히 살아남았다.
7살짜리 딸과 크로커스 단지 내 호텔에 머물고 있던 다리아는 보안요원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그는 처음엔 방에 몸을 숨기고 옷장을 밀어 문을 막았다.
그러나 탈출하기로 마음먹고는 보안요원의 안내로 뒷문을 통해 밖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는 "보안요원은 당시 테러범들이 여전히 건물 안에 있으며 근거리에서 총격을 가하고 있다"며 "그들이 눈치 못 채게 우리한테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는 133명이다. 시신 수색이 진행 중이고, 생존자 중에 위중한 사람도 많아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시신이 발견된 현장은 참혹하고 혼란스러웠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현지 언론 바자(Baza)에 따르면 사람들이 몸을 피하기 위해 찾았던 화장실에서 시신 28구가 발견됐다. 비상계단에서도 14구가 나왔다.
화장실에선 마지막으로 아이들을 꼭 껴안은 채 숨진 어머니도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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