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영화 관람료에는 3%에 해당하는 영화발전기금이 포함돼 있다는 것을 모르는 관객이 적잖다. 이처럼 특정 공익사업과 연계해 부과되는 법정 부담금은 국민이 '나도 모르게' 지출하는 준조세 성격이 강해 '숨은 조세'라고 불린다. 정부가 91개나 되는 부담금을 전면 정비하는 계획을 27일 내놨다. 18개는 폐지되고 14개는 감면된다. 지난 1월 없앤 4개를 합치면 36개의 부담금이 구조 조정되는 셈이다. 금액으로는 연간 2조원 규모가 줄어든다고 한다.
국민이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내용도 꽤 있다. 대표적으로 영화 관람료에 부과되는 부담금은 아예 폐지돼 티켓값이 약 500원 정도 싸지고, 항공요금에 포함되는 출국납부금은 1만1천원에서 7천원으로 4천원 인하된다. 기업과 관련된 부담금도 11개가 정비되는데 분양사업자에게 분양가격의 0.8%(공동주택)를 부과하는 학교용지부담금이 없어지고, 개발사업시행자에게 개발이익의 일정 비율을 부과하는 개발부담금은 분양가 인하를 유도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감면(수도권 50%) 또는 면제(비수도권)하기로 했다. 껌 제조업체로부터 판매가의 1.8%를 징수했던 껌 폐기물부담금도 없어진다.
부담금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만 해도 특정 공익사업의 재원 충당이 목적이었지만 세월이 가면서 본래의 취지에서 벗어난 준조세 성격으로 굳어졌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 때문에 재계를 중심으로 부담금 제도를 개편해야 한다는 요구가 끊이지 않았으나 오히려 부담금 규모는 불어나는 추세다. 당초 올해 정부의 부담금 징수계획은 24조6천억원에 달한다. 부담금관리기본법이 시행된 2002년 징수 실적 7조4천억원과 비교하면 3배 이상으로 늘어난 규모다. 역대 정부가 세금 인상과 달리 국회의 통제를 적게 받고 손쉽게 징수할 수 있는 각종 부담금을 재정 충당 수단으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이 멋대로 부담금의 용도를 변경해 엉뚱한 곳에 낭비되는 돈도 적지 않았다. 그동안에도 부담금을 줄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대부분 무위로 끝났는데 이번에 정부가 획기적으로 부담금 개편에 나선 것은 정부 수입과 지출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문제는 대체 재원 마련이다. 각종 부담금이 이미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고정 수입이 된 상황에서 부담금이 없어지거나 줄어들면 곧바로 관련 사업이 축소되거나 없어질 수 있다. 사업 수혜자들의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하다. 부담금을 재원으로 하는 사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지만, 영화진흥사업과 취약계층 지원 같은 필수 사업들은 기금별 여윳돈 또는 일반 재정을 투입해 유지하겠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결국 줄어든 부담금의 일부는 세금으로 충당하겠다는 얘기다. 지난해 역대 최대 규모의 '세수 펑크'가 난데다 올해 세수 전망도 녹록지 않다. 필수사업 재원으로 쓰이던 부담금 수입마저 줄면 정부의 재정 기반은 더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것이 당연하다. 부담금 정비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꼼꼼하고 세심한 후속 대책이 이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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