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지수 하락 속 'VIP병실 수감' 등에 "공정한 법집행 필요" 비판 제기
(방콕=연합뉴스) 강종훈 특파원 = "요즘 태국에는 총리가 3명"이라는 말이 현지 언론 매체에 자주 등장한다.
세타 타위신 현 총리, 탁신 친나왓 전 총리, 탁신 딸이자 여당 프아타이당 대표인 패통탄 친나왓을 일컫는다.
국정을 좌지우지할 만큼 탁신 부녀 영향력이 크다는 의미다.
세타 총리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패통탄에게 자리를 넘겨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세타는 "내가 유일한 총리로 정부를 장악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런 항변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방증 아니냐는 해석도 가능한 대목이다.
2001년 총리에 오른 탁신은 2006년 쿠데타로 축출된 뒤 부패 혐의 등으로 기소되자 2008년 출국했다.
해외를 떠돌던 그는 공교롭게도 프아타이당 세타 후보가 총리로 선출된 지난해 8월 22일 귀국했다.
귀국 직후 8년 형을 선고받고 수감된 그는 당일 밤 경찰병원으로 이송됐다.
왕실 사면으로 형량은 1년으로 줄었고, 6개월 만인 지난달 18일 가석방됐다.
'VIP 병실 수감생활'을 한 것으로 알려진 그는 결국 감옥에서 하룻밤도 보내지 않았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해외를 전전하던 도망자 신세였지만,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금의환향하듯 손을 흔들며 다시 태국 땅을 밟은 그는 가석방 후 첫 공개 외출로 고향 치앙마이를 방문했다.
지지자들은 영웅 대접하며 반겼고, 세타 총리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이 대거 치앙마이에 집결했다.
두 번째 외출 장소는 집권당 프아타이당 당사였다. 수많은 의원이 탁신을 만나기 위해 줄을 섰다.
사법 당국은 탁신이 경찰병원에 머물 당시 교도소 외부에 있으니 '수감자'라는 단어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이례적으로 발표해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조기 가석방 논란에도 정부는 지병과 연령을 고려한 결정으로 법적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태국 사회에서는 사법 정의를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국민 약 60%가 탁신 가석방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절차상 문제가 없다고 해도 법 감정상 상식적인 법 집행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듯하다.
야권과 전문가들도 사법부와 행정부의 '이중 잣대'를 비판한다.
올란 틴방띠아오 부라파대 교수는 타이PBS에 "탁신 가석방은 사법부 편향 의혹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며 "경찰병원 'VIP 대접'도 당국과 사법 체계에 대한 신뢰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정치평론가 위라 쁘라팁차이쿤은 방콕포스트 칼럼에서 "탁신 사건은 감옥이 '슈퍼 리치'가 아닌 평범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는 냉소주의를 키운다"고 말했다.
통신 재벌 출신인 탁신은 물론 막대한 부도 가졌지만, 단순히 그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특혜 논란에 휘말린 것은 아니다.
탁신이 15년 만에 전격 귀국해 6개월 만에 가석방된 것은 정치적 환경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탁신 세력은 지난 20여년간 친군부 진영과 대립하며 태국 정치를 양분했다.
그러나 지난해 총선에서 개혁 정당 전진당(MFP)이 제1당에 오르는 돌풍을 일으켰고, 우여곡절 끝에 탁신계와 친군부 진영이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귀국 때부터 탁신의 수감 생활이 오래가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왔고 현실이 됐다.
탁신은 정치에서 한발 물러나 있음에도 현시점 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으로 꼽힌다.
사법부가 민주주의 최후 보루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은 태국 민주주의와도 연결된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부설 경제분석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지난달 발표한 '민주주의 지수 2023'에서 태국은 167개국 중 63위였다.
전년 55위에서 8계단 하락했고, '결함 있는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됐다.
전문가들은 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공정한 법 집행이 필수라고 지적한다.
티티난 퐁수디락 쭐랄롱꼰대 교수는 현지 매체 네이션에 "외부에서 태국을 바라볼 때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사법 체계"라며 "민주주의를 강화하려면 법을 공정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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