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앙카라, 야당 수성-여당 탈환 실패…현지 언론 "5대 도시 야당 압승 예상"
'에르도안 라이벌' 야 잠룡 이스탄불 시장, 승리 선언…종신집권 플랜 제동 걸리나
'인플레 심화 등 경제위기 등 패인' 분석…에르도안 "민주주의 승리, 끝 아닌 전환점"
(모스크바·서울=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서혜림 기자 =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치러진 튀르키예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이스탄불과 수도 수도 앙카라 등 주요 도시에서 집권당이 참패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해 5월 대선에서 결선 투표 끝에 재선에 성공, '21세기 술탄'을 꿈꾸며 30년 종신집권의 길을 열었던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의 중대 정치적 시험대로 여겨져 왔다.
여당이 저조한 성적표를 받아들게 됨에 따라 에르도안 대통령으로선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게 됐다. 특히 에르도안의 잠재적 경쟁자인 현 이스탄불 시장이 수성에 성공, 야권 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힘에 따라 에르도안으로서는 타격이 더 커지며 차기 정치 지형이 요동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왔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번 지방선거 최대 격전지로 꼽힌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개표가 96% 이상 진행된 가운데 튀르키예 제1야당인 공화인민당(CHP) 소속인 에크렘 이마모을루(52) 현 시장이 승리를 선언했다.
그는 상대 후보와의 격차가 100만 표 이상이라며 "우리가 선거에서 이겼다"고 말했다.
튀르키예 아나돌루 통신에 따르면 개표 80% 기준, 이마모글루 시장의 득표율은 50.6%로 집권당 정의개발당(AKP) 후보(40.5%)보다 10.1%포인트 앞섰다.
이마모을루 시장은 2028년 튀르키예 대선에서 에르도안 대통령과 맞설 최대 라이벌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그는 2019년 지방선거에서 우여곡절 끝에 집권당 AKP 후보 비날리 이을드름 전 총리를 꺾고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되면서 야권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당시 선거에서 이마모을루는 이스탄불 시장으로 당선됐으나 AKP의 이의제기로 선거 결과가 무효 처리되는 수모를 겪었다. 하지만 재선거에서 다시 당선에 성공하면서 일약 에르도안 현 대통령의 대항마로 부상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자당의 이스탄불 시장 자리 탈환을 위해 총력전을 벌였지만,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과 경제 위기로 인해 여당의 자신감이 꺾였다고 AFP는 전했다.
수도 앙카라 시장 선거에서도 야당의 수성이 확실시된다.
CHP 소속인 만수르 야바스 앙카라 현 시장은 개표가 46.4% 진행된 가운데 58.6%의 득표율로 집권당 정의개발당(AKP) 후보(33.5%)를 압도하는 것으로 나타나자 승리를 선언했다.
야바스 시장은 "선거는 끝났으며 우리는 계속 앙카라를 섬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표 중간 결과에 대해 "우리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와 믿음이 결실을 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나돌루 통신은 집권당인 AKP가 이스탄불, 앙카라를 포함해 5대 도시에서 모두 패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비공식 결과가 나왔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에 따르면 선거가 진행된 81개 지역 중 36곳에서 CHP가 승기를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득표율로 보면 CHP가 AKP(36%)보다 1%포인트 앞서는 37%를 기록했다.
이는 에르도안 대통령 집권 이래 CHP가 기록한 가장 큰 선거 승리 결과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에르도안이 확산일로의 인플레이션과 집권 이래 차입비용 최고치 기록 와중에 제1야당에 충격패를 당했다"고 촌평했고, AP통신은 "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하며 에르도안이 타격을 입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도 "튀르키예의 약진하는 야당이 주요 지방선거에서 에르도안을 세게 때렸다"고 전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리는 당연히 국민의 결정을 존중할 것"이며 이번 지방선거 패배를 공식 인정했다.
그는 AKP 중앙당사에서 "불행히도 우리는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했다"면서도 "이것은 끝이 아닌 전환점이다.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고 계속 승리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고집을 부리거나 국민의 의지에 반하여 행동하거나 국민의 힘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을 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선거의 승자는 민주주의다. 민주주의가 승리한다"라고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이번 선거 최대 승부처인 이스탄불 시장 자리를 라이벌에게 내주면서 정치적 내상이 더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스탄불은 에르도안 대통령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자 그가 1994년 시장에 당선되며 정계에 입문한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젊은 시절 축구 선수로 활약했던 무대이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5년 전 선거에서 야당에 빼앗겼던 이스탄불, 앙카라 등 주요 도시를 되찾고자 했지만, 물가고와 경기 침체 속에 치러진 올해 선거에서도 뜻을 이루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반면 지난해 대선에서 실패하며 흔들리고 있던 야당은 이스탄불과 앙카라를 모두 수성할 경우 에르도안 대통령을 견제할 돌파구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외즈규르 외젤 CHP 대표는 "유권자들이 튀르키예에 새로운 정치 질서를 수립하기로 결정했다"고 강조했다.
abbi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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