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차별 공격 비난여론 속 대형 악재…라파 지상전 제동 걸릴지 주목
네타냐후, 국내 반정부 시위까지 곤혹…하마스 해체도 난제
(서울=연합뉴스) 노재현 기자 = 국제사회 우려에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공격에서 '마이웨이'를 고집해온 이스라엘이 구호 요원들에 대한 오폭 사건으로 거센 비판에 휩싸였다.
미국, 영국 등 이스라엘을 감싸온 동맹과 우방들까지 분노를 쏟아내면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이스라엘 정부가 국내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맞물려 총체적 위기에 놓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일 가자지구에서 전날 벌어진 국제구호단체 월드센트럴키친(WCK) 차량 피습으로 영국인, 미국-캐나다 이중 국적자, 호주인 등 7명이 숨진 데 대해 "이스라엘이 '낙진'(fallout)에 직면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치명적 타격은 이스라엘을 더욱 고립시킬 위험이 있고 (이스라엘의) 주요 동맹국인 미국과 마찰을 가중한다"고 진단했다.
영국 BBC 방송도 "가자지구에서 WCK 구호 직원 7명을 살해한 공습과 관련해 이스라엘에 대한 국제적 압박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작년 10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기습을 받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에 대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펴면서 무고한 팔레스타인 민간인 희생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컸다.
가자지구 당국에 따르면 지난 6개월 동안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에서 약 3만3천명이 숨졌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어린이와 여성이다.
이스라엘이 하마스 소탕을 목표로 가자지구를 사실상 무차별적으로 공격해온 데 대한 국제사회 여론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여러 국적의 구호 요원들까지 희생된 점은 이스라엘에 대형 악재다.
지난달 2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즉각적인 휴전과 인질 석방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처음으로 채택되면서 이미 이스라엘은 외교적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그동안 거부권을 행사한 미국이 기권으로 방향으로 바꾸면서 결의안이 통과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이 대표단의 방미 계획을 취소하면서 불협화음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기 지원 등으로 갈등 봉합에 나섰던 미국은 자국민(미-캐나다 이중국적자)이 포함된 이번 사태에는 이례적으로 "분노"라는 표현을 써가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국가안보소통보좌관은 2일 브리핑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조사 결과를 공개하고 적절한 책임이 따르기를 희망한다"며 책임 문제까지 거론했다.
자국민 3명이 사망한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외무장관은 이날 이스라엘 카츠 이스라엘 외무장관과 전화 통화를 하고 이번 사태를 규탄했다.
캐머런 장관은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 "이스라엘은 이번 사태가 어떻게 일어났는지 긴급히 설명해야 하고 지상에서 구호 요원들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멜라니 졸리 캐나다 외무장관도 엑스에 올린 글에서 "'살인'에 대한 완전한 책임 추궁을 (이스라엘에) 기대한다"며 "인도주의 인원에 대한 공습은 분명 용납될 수 없으며 국제 인도주의 법률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는 이스라엘을 향해 책임을 지라고 압박했고 하자 라비브 벨기에 외무장관은 엑스에 "용납할 수 없다"고 적었다.
미국, 영국 등 서방 국가와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는 그동안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공격을 규탄해왔지만 이를 저지할 실효적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구호 요원에 대한 오폭 사건이 이스라엘의 군사작전과 휴전에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미국 컨설팅 회사 조지타운전략그룹의 데이브 하든은 이번 오폭이 가자지구 휴전에 대한 요구를 증폭시킬 것으로 내다봤다고 WSJ이 전했다.
그는 "비정부기구(NGO)들은 커다란 위험을 안고 있다"며 "지금 이스라엘군과 바이든 행정부는 가자지구의 긴장을 낮춰야 할 때"라고 말했다.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에 대한 이스라엘의 지상전 계획을 중단하라는 국제사회의 목소리도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 1일 라파 지상전과 관련해 "시간이 걸리겠지만 반드시 작전을 진행할 것이다. 라파 작전 없이는 하마스를 이길 수 없다"며 강행 입장을 재확인했다.
팔레스타인 피란민 약 140만명이 몰린 라파에 이스라엘 지상군이 투입되면 민간인이 대거 희생될 우려가 크다.
이에 미국 정부는 라파에 대한 지상공격 계획에 공개적으로 반대를 표명해왔고 지난 1일 이스라엘 정부와 화상회의에서 거듭 우려를 전달했다.
이스라엘이 라파 지상전을 강행하겠다는 뜻을 고수해왔지만 구호 요원 오폭으로 당초 구상이 어떤 방식으로든 제약을 받을 수 있다.
네타냐후 정권은 국내에서는 거센 퇴진 압박을 받고 있다.
2일 밤 예루살렘에 있는 이스라엘 의회 건물 앞에서 시위대 수천 명이 네타냐후 내각의 사퇴를 요구하며 나흘째 반정부 시위를 이어갔다.
특히 이날 시위에는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도 참여해 네타냐후 총리가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일요일인 지난달 31일에는 의회 건물 인근에 10만여명이 모여 네타냐후 정부가 주도하는 우파 연정 퇴진을 촉구했다.
작년 10월 전쟁 발발 이후 이스라엘 의회 앞에 집결한 시위대 규모로는 최대였다.
네타냐후 정권에 대한 이스라엘 국민의 불만이 그만큼 커졌음을 보여준다.
올해 1월 이스라엘 민주주의 연구소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이스라엘인 15%만이 전쟁 후에도 네타냐후가 총리로 남기를 원한다고 답했다.
이스라엘 국민이 네타냐후 총리에게 등을 돌린 데에는 하마스의 기습 공격에 대비하지 못한 안보 책임과 더불어 이스라엘인 인질들을 데려오지 못한 영향이 크다.
하마스는 작년 10월 기습 공격 당시 약 250명을 인질로 가자지구로 끌고 갔다. 이들 중 100여명은 작년 11월 일시 휴전 때 풀려났지만 130여명은 여전히 억류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이집트 등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협상을 중재하는 데 힘을 쏟고 있지만 양측 간 입장차로 협상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최근 모사드와 신베트 등 정보기관 수장에게 휴전 협상의 재개를 승인하면서 다소 유연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영구 휴전과 철군을 요구하는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이견이 큰 것으로 알려져 협상이 언제 재개될지 불확실하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압박과 인질협상 답보, 반정부 시위 등 사면초가 국면에서 가자지구 공격을 이어가지만 하마스 전면 해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달 27일 미국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24개 대대 가운데 20개 대대를 해체했다고 밝히면서도 하마스 잔당이 여전히 활동할 능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의 나머지 4개 대대가 라파에 숨어있는 것으로 본다.
이스라엘군이 지난해 11월 군사작전을 벌였던 가자지구 최대 병원 알시파 병원을 최근 또 기습한 것은 하마스 소탕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영국 더타임스는 "이스라엘군이 몇 달 전 하마스 대원들을 소탕했다고 주장했던 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는 점은 이스라엘군의 전술 효과에 의문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
noja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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