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유엔 자문기구서 재판소 설치 제안 등 논의 본격화
배상방식 놓고는 견해 엇갈려…후손들 개별보상·피해국 경제 일괄지원 등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국가들 사이에서 대서양 노예 무역 시대의 잔혹 행위에 대한 국제 재판소 창설에 대한 지지가 형성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이 4일(현지시간) 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후 나치 전쟁 범죄자를 처벌한 뉘른베르크재판 등 다른 특별 재판소를 본뜬 노예무역 재판소 창설은 지난해 6월 아프리카계를 위한 유엔 자문기구인 아프리카계영구포럼이 공식 권고하면서 제안됐다.
로이터는 10여명을 인터뷰한 결과, 이 같은 구상은 이제 좀 더 폭넓은 노예제도 배상 움직임 내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카리브공동체(CARICOM·카리콤) 노예제도 배상 위원회 부위원장인 에릭 필립스는 특별 재판소 구상을 놓고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지역 기구들에서 살펴봤다고 말했다.
특별 재판소의 범위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아프리카계영구포럼은 예비 보고서에서 노예화,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 제노사이드(집단학살), 식민주의에 대한 배상을 다뤄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카리콤과 아프리카연합(AU) 내 지지자를 포함한 이 구상의 지지자들은 유엔 회원국 사이에서 이 같은 구상에 대해 보다 폭넓은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필립스 부위원장은 전했다.
지지자들은 특별 유엔 법정이 복잡한 국제적, 역사적 배상 당위성에 대한 법적 규범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배상에 반대하는 측에서는 현대 국가와 기관들이 과거의 노예제도에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뉘른베르크재판과는 달리 대서양 노예무역에 직접 관여한 사람 중 살아있는 사람은 없다.
이런 까닭에 지지자들조차 이러한 노예제도에 대한 국제 재판소를 설치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인정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지난해 11월 아프리카와 카리브해 국가 정상들이 모인 가운데 가나에서 열린 배상 정상회의에서도 재판소 제안이 논의됐다.
아프리카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나이지리아와 수십만명이 노예가 됐던 남아메리카 그레나다도 재판소 설치 구상을 지지하고 있다.
필립스 부위원장은 재판소 설치는 유엔 시스템을 통해 이뤄져야 하며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 덴마크 등 노예 무역과 관련된 국가들과도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로이터는 아프리카, 카리브해 국가들 사이에서 이 같은 구상을 지지할 가능성이 있는 나라가 몇 곳인지는 파악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재판소 설치를 가장 강력히 지지하는 인사 중 한명으로 꼽히는 이는 아프리카계영구포럼 구성원인 저스틴 핸스퍼드 미국 하워드대 교수로, 그는 50여개 국가가 참석한 가운데 오는 16일 시작되는 이 포럼 세번째 회기에 해당 구상을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핸스퍼드 교수는 9월 유엔 총회에서 좀 더 강력한 지지 속에 노예제 배상과 관련한 재판소 설치 등의 제안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며, 향후 아프리카를 방문해 추가 지지 확보 활동을 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미국은 이 사안과 관련, 노예제 배상과 관련한 재판소 설치 구상이 진전되고 실행되는 단계에서 이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국무부 대변인은 말했다.
네덜란드 외무부 대변인은 해당 재판소를 둘러싼 논의에 대해 알지 못한다면서 답변할 수 없다고 밝혔고, 프랑스 정부는 답변을 거부했다. 포르투갈, 스페인, 덴마크는 이와 관련한 언급 요청에 대답하지 않았다.
15세기에서 19세기 말까지 아프리카에서 노예로 팔려간 이들은 최소 1천250만명에 달하며, 이 과정에는 유럽뿐 아니라 미국과 브라질 선박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예제 폐지 전까지 포르투갈은 거의 600만명을, 영국은 약 320만명을 노예화했는데, 노예로 끌려간 이들은 브라질, 미국 농장 등에서 혹사당했다.
아프리카에서는 가나는 공식 배상을 위한 지지세 규합 노력을 주도하고 있으며 나이지리아, 세네갈 등도 이를 지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논의는 대서양 불법 거래에 집중돼 있다.
배상 방식을 놓고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미국 등 일부는 노예로 끌려간 사람들의 후손들에게 개별적으로 배상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지만, 카리콤은 공중 보건과 경제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유럽 국가들의 지원과 채무 탕감을 촉구하고 있다.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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