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불확실성에 성장 전략 대신 비용 절감에 사활
(서울=연합뉴스) 전성훈 기자 = 롯데마트는 2022년 11월부터 아이디어 소통 게시판 '아이디어GO(고)'를 운영 중이다.
임직원이 점포 현장이나 본사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업무 또는 불필요한 비용을 줄일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창구다.
아이디어가 채택돼 실제 성과로 이어지면 제안자에게 포상금이 지급된다.
지난해에만 900건 이상의 아이디어가 나왔고 이 가운데 100건가량이 현장에 적용됐다.
계산대 영수증 용지 낭비 개선 아이디어도 그 가운데 하나다. 이전에는 계산대 영수증 용지가 2.4m(약 10회분)가량 남았을 때 용지 교체 알람이 표기돼 잔여 용지가 버려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한 점포 직원이 영수증 용지를 모두 사용했을 때 교체 알람을 하도록 바꾸자고 제안했고 지난해 초 이를 전 점포에서 시행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약 1천500㎞ 길이, 2만2천회 분량의 용지를 절약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금액으로 따지면 연 3천만원이다.
롯데마트가 이렇게 다양한 아이디어를 현장에 적용해 절감한 비용은 지난해에만 약 100억원에 이른다.
신세계그룹 계열 온라인 플랫폼 SSG닷컴(쓱닷컴)도 2019년 새벽배송을 위한 재사용 보랭가방 '알비백'을 도입한 데 이어 이듬해에는 온라인 주문 시 함께 제공되던 종이 주문확인서를 모바일로 전환해 지난해 기준 40억원의 비용 절감 효과를 봤다.
실적 악화에 시달리는 유통업계가 비용 감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고물가·고금리에 따른 소비 위축 현상이 지속하는 가운데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와 같은 중국계 전자상거래 플랫폼의 '습격'까지 더해지면서 시장 상황이 더 어려워진 탓이다. 적극적인 사업 활동으로 수익을 내는 일이 여의찮게 되자 우선 비용을 줄여 체질 개선을 도모하는 것이다.
8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온은 다음 달 1일부로 바로배송 서비스를 종료하기로 했다.
바로배송은 롯데온 내 롯데마트몰에서 장보기 상품을 구매하면 2시간 이내에 상품을 배송해주는 서비스로 전국 8개 점포에서 운영해왔다. 그동안 운영 점포를 점차 줄여오다 이번에 완전히 손을 떼기로 한 것이다. 롯데온은 2022년 4월 새벽배송 서비스도 중단한 바 있다.
롯데온은 배송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며 앞으로 당일배송과 예약배송에 집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온의 배송 서비스 축소는 물류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고육지책 성격이 짙다. 2020년 롯데그룹 유통사업군의 통합 온라인몰로 출범한 롯데온은 매년 1천억원 안팎의 손실을 내면서 누적 적자가 5천억원에 육박한다.
지난해 사상 첫 연결 기준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마트[139480]도 부진한 사업을 털어내거나 개편하는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반려동물용품·서비스 전문 매장인 몰리스는 외부 전문점 수를 축소하는 대신 이마트 점포 내 반려동물용품 구색을 강화한 '미니몰리스'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사업 개편이 진행 중이다. 이에 따라 몰리스 전문점은 36개에서 25개로 준 반면에 미니몰리스 매장은 100여개로 늘었다.
수익성이 떨어지는 점포 내 골프 전문 매장도 정리하고 있다. 현재까지 10여개 골프 전문 매장을 없애고 일반 스포츠 매장에서 골프용품을 판매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골프 전문 매장이 빠진 공간은 매출과 효율이 높은 다른 상품 매장으로 리뉴얼 중이다.
앞서 이마트[139480]는 창립 31년 만에 처음으로 근속 15년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전사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도입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비용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인건비를 조금이나마 줄여 수익성을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이마트는 희망퇴직 신청 기한을 이달 12일에서 19일까지로 일주일 연장하는 한편 퇴직 희망자들의 요청을 반영해 특별퇴직금, 생활지원금, 전직지원금 외에 퇴직 후 10년간 이마트 쇼핑 시 할인을 제공하는 등의 혜택을 추가했다.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인 11번가도 인건비 부담을 더는 데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1차 희망퇴직 프로그램에 이어 지난달에는 2차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또한 물류센터 용역을 없애고 일부 내부 인력을 전환 배치하는 등 인력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올해 목표한 오픈마켓 영업손익의 흑자 전환을 위해서는 비용 최소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보고 가장 먼저 인건비 절감에 나선 것이다. 11번가 직원 수는 1천200∼1천300명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GS리테일[007070]은 한 달 더 나아가 사업 포트폴리오 자체를 재구성하고 있다.
지난해 인테리어·문구 전문 온라인 쇼핑몰 텐바이텐 지분을 전량 매각한 데 이어 GS더프레시 온라인몰 사업에서도 손을 뗐다. 실적이 부진한 사업을 정리하고 수익성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기 위한 것이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GS리테일은 지난해 4분기 GS프레시몰 사업에서 완전히 철수하면서 올해 5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 개선이 예상된다"며 "올해에도 경쟁력 없는 사업 투자를 최소화하고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전략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분석했다.
GS리테일은 이와 함께 매년 정례적으로 희망퇴직 프로그램을 시행하며 지속적인 인력 운영의 효율화를 꾀하고 있다.
이밖에 유통 업황 악화와 실적 부진으로 자금 조달 위기를 겪는 홈플러스도 온라인 주문 상품 배송 시 포장재 최소화, 모바일 영수증 사용, 전자가격표 도입, 매장 조명 교체, 물류 시스템 개선, 대형마트·슈퍼마켓(홈플러스 익스프레스) 간 통합 소싱 고도화 등 전방위적인 효율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러한 비용 절감은 적자 구조에 갇힌 기업에 특히 체감 효과가 크다. 컬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컬리는 지난해 인건비 40억원, 광고선전비 222억원, 운반비 65억원, 포장비 99억원 등 모두 477억원의 비용을 절감했다. 판매관리비 절감액만 315억원에 이른다. 이를 통해 지난해 영업손실을 전년 대비 40% 줄였다.
이를 토대로 올해 1분기는 2015년 창립 이후 첫 분기 영업이익 흑자까지 바라보고 있다. 일회성 비용 감축이 아닌 구조적인 비용 구조 개선을 통해 실적 전환을 끌어냈다는 점에서 시장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통업계의 비용 감축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고금리, 고물가의 경제 여건과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이 맞물려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정으로 인식되면서 그 노력이 배가되는 양상"이라고 짚었다.
lu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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