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피폐 러시아, 中 의존도 커져…일대일로-'유라시아 경제연합' 협력 조율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에 경계심을 보이던 러시아가 호의적인 입장으로 바뀌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8일 보도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명분 삼아 사실상 '뒷마당'인 중앙아시아를 공략하는 걸로 인식했던 러시아가 갈수록 '공존 번영'으로 입장을 선회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2013년부터 중국이 일대일로 사업을 본격화하자 러시아는 2015년 벨라루스·카자흐스탄·아르메니아·키르기스스탄을 회원국으로 유라시아 경제연합(EEU)을 출범시킨 바 있다.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가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 전략을 방해하거나 안보적 위협을 가할 수도 있다고 보고 유라시아 경제연합을 제도화하는 한편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진출을 촉진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것이었다.
러시아의 견제가 두드러졌던 사업이 중국-키르기스스탄-우즈베키스탄 연결 철도였다.
중국이 러시아를 경유하지 않는 유럽행을 위해 523㎞의 이 철도 건설을 1990년대 제안해 일대일로 사업 개시 직후 적극적으로 추진했음에도 러시아의 반대로 지지부진했으나, 지난해 러시아가 입장을 바꿈으로써 급물살을 타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이 신문은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중앙아시아 국가들과 중국의 경제협력이 본격화하면 EEU가 유명무실화해질 걸 우려했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자국 경제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중국과의 공존을 통한 생존로 모색 차원에서 일대일로 사업에 호의적으로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작년 10월 18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제3회 일대일로 국제협력 정상포럼 개막식에 참석해 일대일로 구상이 성공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 러시아가 핵심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푸틴 대통령은 일대일로 구상이 유라시아 연결에 관한 러시아의 생각과 일치한다면서 노르웨이 접경지 무르만스크에서 알래스카 인근 베링해로 이어지는 북극해 항로를 함께 개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어 같은 해 12월 19일 미하일 미슈스틴 러시아 총리는 베이징에서 리창 총리와 회담을 통해 EEU와 일대일로 사업 간 시너지 효과를 촉진하자고 결의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이런 입장 선회는 우크라이나전 이후 러시아 경제의 중국 의존 심화와 관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러시아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의 제재로 서방 국가에 대한 가스·원유 판매로가 막히고 수익이 급감하자 이를 대(對)중국 수출로 돌려왔다.
칭화대 일대일로연구소의 준 아흐메드 칸 연구원은 "유럽 에너지 시장 접근이 크게 제한된 러시아가 일대일로 사업에 합류해 아시아와 남반구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 간의 국제 금융거래를 중개하는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스위프트)가 우크라이나전 직후 제재로 러시아 주요 은행들을 스위프트 결제망에서 배제한 것도 러시아 입장 변화를 부른 요인이라고 SCMP는 짚었다.
EEU 회원국들이 러시아에 이은 스위프트 배제 가능성을 우려하는 상황이 되자, 이들 국가의 '이탈 가능성'을 우려한 러시아가 중국 일대일로 사업과의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인민대의 왕이웨이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러시아가 중국의 영향력을 활용해 (EEU 이탈 가능성이 있는) 카자흐스탄의 신뢰를 회복할 목적으로 EEU와 일대일로 사업 간 조율을 강조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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