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민협정, 불법 난민 송환 확대·회원국 간 난민 수용 강제 분담
일부 국가 반발에 혼란 예고…노동력 부족한데 '합법 이민' 논의는 실종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유럽연합(EU)이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고조된 반(反)이민 정서에 국경 빗장을 더 단단히 걸어 잠그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 10일(현지시간) 본회의 표결에서 난민 규제 강화를 골자로 한 이른바 '신(新) 이민·난민 협정'(이하 협정)을 구성하는 총 10가지 법안을 가결했다.
2020년 9월 EU 집행위원회가 초안을 발의한 지 3년 7개월 만으로, 이달 중 EU 27개국이 최종 승인하면 모든 입법 절차가 마무리돼 약 2년 뒤부터 시행된다.
약 20여년 만에 이민·난민 정책이 대대적으로 개혁되는 것이기도 하다.
새 협정의 핵심은 크게 불법 이주민의 신속한 본국 송환과 회원국 간 난민 수용 분담 등 두 가지다.
우선 보통 1년 이상 걸리던 망명 심사 절차가 최대 12주로 단축된다. 자격을 갖추지 않은 '불법 이주민'은 그 즉시 본국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된다. 사실상 신속한 추방을 가능하게 한 셈이다.
난민들이 주로 먼저 도착하는 이탈리아 등 '최전선 국가'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도 포함돼 있다. 소위 '의무적 연대' 조항이다.
특정 회원국에 몰린 난민을 다른 회원국이 수용하거나, 이를 원치 않는 회원국은 '수용 거부한' 난민 인원만큼 재정적 기여를 해야 한다.
새 협정 논의를 촉발한 건 2015년 시리아발 난민 대량 유입이다.
당시 시리아 내전을 피해 시리아·이라크에서 130만 명이 넘는 난민이 유럽으로 몰리면서 더블린 조약 개혁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남유럽 회원국들 사이에서 분출했다.
1997년 발효된 더블린 조약은 EU 역내에 들어온 이주민·난민이 처음 발을 디딘 국가에 망명·난민 신청을 해야 한다는 규정을 담고 있다.
구체적 방법론을 둘러싸고 수년간 진통이 계속되던 협상이 진전된 건 작년 말 정치적 합의가 전격 도출되면서다.
다분히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 표심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이민 공약을 앞세운 군소·신생 극우 성향 정당들이 올해 선거에서 약진할 수 있다는 의회 내 주류 정치그룹들의 우려가 고조되면서 협상의 물꼬가 트였다는 것이다.
새 협정이 순조롭게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EU는 마지막 남은 27개국 승인을 만장일치 대신 다수결 투표를 통해 매듭짓는다는 구상이지만, 이렇게 되면 이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당장 폴란드와 헝가리는 난민 수용 분담에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집행위는 향후 협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선 제재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 시행 과정에서 EU 회원국 간 혼란과 갈등도 예상된다.
표심 걱정에 관련 논의가 이주민 유입 차단에만 치우쳐 있다는 인상도 지우기 어렵다.
유럽 산업계에서는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이유로 더 적극적인 이주민 수용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집행위도 향후 6년간 약 700만명이 유럽 노동시장에서 은퇴할 것이라며 인력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합법적 이주민' 수용 확대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구체적 논의는 사실상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이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반감 탓이다.
이주민의 노동시장 진입 장벽은 상당히 까다로운 편으로, 작년 기준 EU에 입국한 350만명 가운데 취업 비자를 받은 이주민은 120만명에 그쳤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본사 직원의 40%가 외국인인 세계 유일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제조기업인 ASML이 정부의 반이민 정책 탓에 고급 인력 확보난을 호소하며 본사 이전 가능성을 시사했다.
벨기에 난민 단체의 한 전문가는 브뤼셀타임스에 "정치인들은 종종 현실을 왜곡한 채 이주 억제에 관한 부정확한 정보로 유권자들을 오도한다"면서 "정책 입안자들은 늘 '망명 신청자'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대다수는 경제적, 가족 재결합이나 학업적 목적으로 정상적 경로를 통해 오는 이들"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도 유럽에 도착하는 전체 이주민 가운데 망명 신청 희망 난민 비율은 10%에 그친다고 이 매체는 짚었다.
sh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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