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강건택 이정현 오규진 기자 = 4·10 총선에서 야권이 압승을 거두면서 정부에서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통신과 방송 분야 주요 정책들이 기로에 설 것으로 보인다.
가계통신비 인하라는 대원칙에는 여야가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내용과 방향성에서 작지 않은 차이가 포착된다.
그나마 큰 틀에서 시각차가 크지 않은 통신과 달리 방송 정책과 관련 규제기관 운영을 놓고서는 첨예한 갈등이 분출될 가능성이 크다.
◇ 野, 휴대전화 판매·이통서비스 분리법안 추진…전환지원금 없어지나
정부·여당이 연초부터 추진 중인 '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 폐지 자체는 더불어민주당도 동의한다는 점에서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계속 진행될 것이 유력하다.
다만 추진 속도가 늦어지거나 궤도가 수정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가장 시각차가 큰 대목은 휴대전화 제조사 규제 문제다.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단통법 폐지안이 제조사에 대한 규제를 뺀 '제조사 봐주기' 법안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당은 지난달 6일 발표한 '가계통신비 경감을 위한 공약'에서도 "과도한 가계통신비 부담의 한 축인 제조사의 단말기 가격 인하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은 외면·방기하는 졸속 정책을 추진했다"고 정부·여당을 비판한 바 있다.
특히 단통법 폐지에 앞서 정부가 시행령 개정과 고시 제·개정을 통해 내놓은 번호이동 전환지원금 제도는 그 자체로 위법일 뿐만 아니라, 제조사의 판매장려금은 배제한 채 이동통신사에만 전환지원금을 강요했다는 점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민주당은 이통사가 제조사로부터 단말기를 공급받아 통신서비스와 연계해 판매함으로써 '고가 단말기-고가 요금제-고가 지원금'이 하나로 묶이는 통신비 상승 구조에 메스를 들이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국민의힘 박성중 의원의 단통법 폐지안(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백지화하고, 휴대전화 공급·유통과 이동통신 서비스를 분리해 단말기 가격 경쟁을 유도하는 방향의 대안 입법을 준비 중이다.
민주당 안정상 방송정보통신수석전문위원은 14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제조사는 단말기 공급·판매만 하고, 이통사의 단말기 판매는 금지하게 한다는 것"이라면서 "이런 식의 절충적 완전 자급제가 되면 가성비 좋은 해외 단말기가 국내시장으로 유입돼 소비자 선택의 폭이 확대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상대로 전환지원금을 허용한 단통법 시행령 개정과 관련 고시의 폐지를 요구하는 방안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전환지원금 폐지가 당장 소비자 혜택을 축소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또 선거 후 다른 현안에 밀려 단통법 폐지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아울러 민주당은 ▲ 미성년 자녀·노부모를 위해 지출한 통신비 세액공제 신설 ▲ 병사 요금 할인 50%로 상향 ▲ 잔여 데이터 선물 또는 이월 허용 ▲ 공공 슈퍼 와이파이 구축 ▲ 고객센터 통화료 전면 무료화 등 단통법 폐지와 함께 내놓은 6대 통신비 경감 공약을 22대 국회에서 추진할 예정이다.
통신비 경감은 국민 생활에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에서 차기 국회의 주요 의제 중 하나가 될 전망이지만, 일각에서는 정치적으로 우선순위에 있는 다른 쟁점에 밀려 단통법 폐지 추진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 높아질 과방위 문턱에 방송 '풀고 죄기' 순항할까
방송 업계와 관련해 정부는 올해 업무계획에서 대기업의 소유·겸영 규제는 완화하되, 심의 규정 위반이 누적된 방송사에 대한 불이익은 강화하는 방식으로 '풀고 죄기'를 하겠다는 방침을 내놓고 이를 추진 중이다.
실질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명문화'가 필요한데, 의석 차가 큰 여소야대 국면이어서 관련법 개정안이 당장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문턱을 넘기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가 독자적으로 꺼낼 수 있는 시행령 개정 카드가 있긴 하지만, 이 역시 거대 야권의 강한 비판을 불러올 수밖에 없어 부담스럽다.
특히 방송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야권 당선자들이 22대 국회 과방위에 다수 포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전운이 더욱 짙어지는 분위기다.
방통위가 최근 방송의 사회적 책임 제고를 위해 심각한 법령 위반이 있을 경우 방송사 허가·승인의 최소 유효기간을 축소하고, 심의 규정을 반복적으로 위반한 경우 방송평가 시 감점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을 둘러싸고 여야가 정면충돌할 수도 있다.
주요 방송사 중 연내 재허가 심사가 예정된 곳이 MBC라는 점에서다. MBC가 현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많은 법정 제재를 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당장 재허가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당국이 MBC에 여러 제한을 가할 경우 야당과 진보 성향의 언론시민단체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야권의 주요 비판 대상인 방심위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류희림 위원장 취임 후 방심위는 방송사뿐만 아니라 유튜브의 허위 조작정보, 인터넷 언론의 악의적 오보들에 대한 심의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부각했지만, 이번 선거 결과에 따라 일정 부분 동력이 감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공석인 방통위원과 방심위원 자리에 야권 추천 위원들이 합류할 경우 적지 않은 정책 추진과 의결 과정에서 위원회 내 대립과 갈등이 격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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