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가격 하락에 中 수입비용 연 58조 줄어…"우리도 대만의 절박함 필요"
(서울=연합뉴스) 강건택 기자 = 지금 세계는 반도체 전쟁(칩워) 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필수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한 주요국들의 경쟁은 인공지능(AI) 일상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더욱 격화하는 분위기다.
미국을 중심으로 유럽연합(EU)과 일본까지 거액의 보조금을 쥐여주면서 반도체 기업 생산 시설을 자국에 유치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그 배경에는 미중 기술패권 쟁탈전이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에 맞서 미국이 반도체 보조금이라는 카드를 꺼냈기 때문이다. 인텔을 비롯한 자국 기업은 물론 대만 TSMC와 한국 삼성전자[005930] 등 동맹국 기업도 그 수혜 대상이 됐다.
반도체에서도 자급자족식 '붉은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오히려 미국의 안보 불안감만 자극해 글로벌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되는 역효과를 낳았다고 이현익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홈페이지 기고문에서 진단했다.
그러나 미국, 유럽, 아시아 국가들의 무분별한 보조금 경쟁은 생산성 향상과 공급량 증가에 의한 반도체 생산 단가 하락을 촉진, 결국 최대 수입국인 중국에 가장 큰 이득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이 부연구위원은 지적했다.
2022년 기준으로 반도체 가격이 10% 하락하면 중국은 연간 417억달러(약 57조6천억원)의 수입 비용을 절감할 수 있어서다.
게다가 중국이 미국 등의 제재로 첨단 반도체 공급망에서 이탈한 대신 구세대 레거시(범용) 반도체에 투자를 집중해 이 분야에서 자급자족형 제조 생태계를 만들어냈다는 점도 우려스럽다.
미국 조지타운대 안보·신기술센터(CSET)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중국의 20㎚(나노미터) 이상 구세대 로직 반도체 생산능력은 대만(266만 장·35.2%)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210만 장(27.9%)으로 3위 일본(68만 장)의 3배가 넘는다.
중국이 글로벌 보조금 경쟁에 따른 반도체 구매 비용 절감분을 재투자해 저가 반도체 시장에서 영향력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 여러 제조 분야에서 중국의 '붉은 공급망'이 확대될 때마다 가장 큰 손해를 감수했던 한국으로서는 반도체 영역에서도 중국의 공급망 확대에 맞서 "레거시 공정 보존과 지속 생산 업체의 인위적이고 정책적인 육성이 필요할 수 있다"고 이 부연구위원은 제안했다.
또 제조 중심의 노동집약적 반도체 산업 영역을 팹리스와 디자인하우스 등 설계 부문의 지식집약적 산업 영역으로 전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부연구위원은 "어쩌면 시간이 조금 흐른 뒤 우리는 구세대 반도체 제조 영역에서 중국과 점유율 다툼을 해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면서 "국가 생존 보장의 방패로서 반도체 산업을 다루는 대만의 절박함이 우리에게도 필요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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