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는 가능, 판매는 금지'…의료용 대마초에 애연가 몰려
(베를린=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 "단돈 1유로에 처방전 받고 대마초를."
독일 원격진료업체 A사는 홈페이지에 1유로(약 1천470원)짜리 동전 이미지와 함께 대마초 처방전 홍보 문구를 걸었다. '2024년 4월1일부터 환자 수백만 명에게 대마초를 이용한 치료가 가능해졌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23일(현지시간) 회원으로 가입하고 처방전 발급을 시도해봤다. 18개 항목의 문진표를 작성하는 데는 5분도 걸리지 않았다. 6개월 넘게 불면증에 시달렸고 대마초 문제로 형사처벌을 받은 적은 없다고 적었다. 곧바로 '의사가 대마초를 처방해줄 가능성이 커 보이니 상담을 예약하라'는 인증 이메일이 왔다.
그러나 상담 예약 단계에서 가로막혔다. 전국 7개 도시에서 대면 상담은 물론 온라인 화상 진료도 가능하지만 주말을 포함해 6월말까지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이달 1일부터 기호용 대마초를 합법화한 독일에서 '가짜' 불면증 환자가 늘고 있다. 대마초가 마약류에서 제외되면서 의료용 대마초도 폭넓게 허용됐기 때문이다.
합법화 이전에는 만성질환에 다른 치료법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경우에만 대마초 처방이 허용됐다. 그러나 이제 불면증 치료제나 진통제·항우울제로도 별다른 제한 없이 처방전을 발급받을 수 있다.
한국과 달리 온라인 진료가 가능해 처방전을 집으로 배달까지 해주는 원격진료업체에 '환자'가 몰리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에 본사를 둔 A사는 이달 들어 회원 수가 10배 늘었고 지난달 말 부활절 연휴에는 홈페이지 서버가 마비되기도 했다고 일간 쥐트도이체차이퉁(SZ)에 전했다.
의료용 대마초를 전문으로 하는 온라인 약국 C사는 '주문이 폭주해 4월13일부터 전자 처방전을 받지 않는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대마초공급약국협회(VCA)는 합법화 이후 처리하는 대마초 처방전이 5배 늘었고 90% 정도는 원격으로 발급받은 처방전이라고 밝혔다.
원격진료에 환자가 몰리는 건 합법화 이후에도 정작 적법하게 대마초를 구할 방법은 마땅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독일 정부는 대마초를 암시장에서 양지로 끌어올리겠다며 기호용 대마초 판매는 계속 금지하고 있다. 대마초를 피우려면 직접 재배하거나 7월1일부터 운영되는 대마초클럽을 통해 구해야 한다. 대마초클럽들은 재배시설을 갖추는 등 준비를 거쳐 회원에게 대마초를 공급하려면 몇 달 더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의료용 대마초에 애연가가 몰리자 실제 치료 목적으로 대마초가 필요한 환자들이 피해를 보게 됐다. 이들은 대마초 치료에서 비롯한 사회적 낙인을 벗기 위해 합법화를 지지했지만 기대와 정반대 상황이 됐다고 호소한다.
미하엘 캄베크 대마초환자협회(BDCan) 대변인은 "회원들로부터 합법화 이전보다 더 이상한 질문과 비난에 시달린다는 얘기를 듣는다"며 수요가 넘치는 특정 품종 대마초를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걱정도 있다고 전했다.
dad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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