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 피해자 先구제 가능한가…투입예산 추계도 천차만별

입력 2024-04-24 12:13  

전세사기 피해자 先구제 가능한가…투입예산 추계도 천차만별
시민단체 "소요 예산 3천억∼4천억원대"…정부는 조단위 투입 우려
최우선변제금도 못받는 피해자만 先구제 대상?
법 조항 모호해 구제 규모·회수 가능성 추산 어려워



(서울=연합뉴스) 박초롱 기자 = 더불어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선(先)구제 후(後)회수' 방안을 담은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고 연일 강조하는 가운데 이에 따른 재정 투입 규모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적게는 3천억∼4천억원대에서 많게는 수조원대가 소요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정부는 더 충분한 논의와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며 21대 국회 내 특별법 개정안 통과에 부정적이다.
24일 서울 강남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 서울지역본부에서는 국토연구원 주최로 '전세사기 피해지원의 성과 및 과제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피해지원 '성과와 과제'였지만, 논의는 특별법 개정안의 '선구제 후회수' 방안에 집중됐다.
'선구제 후회수'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 공공기관이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을 우선 사들여 보증금 일부를 돌려준 뒤 임대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거나 전세사기 피해주택을 매각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금을 회수하는 방안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선구제 후회수'를 계속해서 요구했으나 정부는 선을 그어왔다.
사인 간 계약에서 발생한 손실을 정부가 구제하는 것은 전례 없는 일이며, 보이스피싱 등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런 가운데 4·10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 특별법 개정안 처리는 급물살을 타고 있다.
현재 선구제 후회수 방안을 포함한 전세사기 피해지원 특별법 개정안(국토교통위원회 대안)은 야당 단독 의결로 본회의에 직회부돼 있다.



개정안은 전세사기 피해자는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의 공공 매입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고, 채권 매입기관은 공정한 가치 평가를 거쳐 채권을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채권 매입 가격은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라 최우선변제를 받을 보증금의 비율 이상으로 뒀다. 최우선변제금만큼은 돌려받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특별법 개정안의 피해자 구제 조항이 모호해 재정 투입 규모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우선변제금 이상으로 회수를 못 하는 임차인에 대해 최우선변제금 이상을 채권 매매 대금으로 지급하려면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이 1억원인 서울 주택의 경우 선순위 채권 등이 있다면 전세보증금 반환채권 가치평가액은 2천만원가량이 될 수 있다. 서울 지역 최우선변제금은 5천500만원이기에 3천500만원의 재정이 소요된다.
개정안은 채권 매입 가격의 하한선을 '주택임대차보호법 8조에 따른 우선변제를 받을 보증금의 비율'로 두고 있다.
서울 지역의 경우 보증금 1억6천500만원 이하 소액임차인일 경우 최우선변제금을 5천500만원(33%), 경기·인천에서는 보증금 1억4천500만원 이하일 때 4천800만원(33%)을 받을 수 있어 30%가량으로 해석이 되나, 명확하지는 않다.
정확한 의미를 갖도록 법 조항을 수정·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시민단체는 '선구제 후회수'에 필요한 예산이 4천875억원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가 지난해 8∼9월 자체적으로 실시한 피해자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추산한 결과다. 피해자 수 2만5천명, 후순위 임차인이면서 최우선변제 대상이 아니라 보증금 회수가 불가능한 피해자 비율 50%, 피해자 평균 보증금은 1억3천만원으로 가정했다.
최우선변제금조차 받지 못하는 후순위 임차인을 대상으로 전세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입해 구제하는 경우에 대한 추산이다. 피해자 수를 3만명까지 늘려 잡으면 최대 5천850억원이 소요된다고 봤다.
그러나 정부는 '선구제 후회수'에 필요한 재정이 조단위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개정안은 최우선변제금도 못 받는 후순위 임차인뿐 아니라 모든 전세사기 피해자의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을 매입할 수 있게 돼 있어 구제를 후순위 임차인으로 한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의 평균 보증금을 1억3천만원으로 잡고, 피해자를 3만명, 보증금의 30%를 선구제액으로 잡으면 1조1천700억원이 소요된다.
이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윤성진 국토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증금 전액을 손실 본 피해자, 손실 규모가 큰 피해자, 작은 피해자 등 피해자 유형이 천차만별인 데다, 피해자 규모, 특별법 적용 기간 등에 따라 피해자의 채권 가치 추정과 회수율 전망에 차이가 생긴다"고 말했다.
피해 구제에 필요한 예산 규모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뜻이다.
특별법 개정안은 '선구제 후회수' 대상을 '전세사기 피해자'로 명시하고 있어 신탁 사기, 무권 계약 피해자는 여전히 정책 사각지대에 놓이는 문제도 있다.
윤 부연구위원은 "기존 부실채권 매입 사례가 주로 금융기관 채권을 매입하는 것이었다면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은 개인 채권을 매입한다는 점에서 특수성이 있다"며 "이 과정에 상당한 인력과 비용이 투입될 것으로 예상되며 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예산·조직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규철 국토부 국토도시실장은 "'선구제 후회수' 같은 대안들이 다각도로 검토되는 것은 좋지만, 실제 실행 가능한 수단이 될 것인지에 대한 충분한 논의와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chopark@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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