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에 담긴 지배구조 개선안…韓증시 저평가 탈출 계기되나

입력 2024-05-02 14:03   수정 2024-05-02 15:26

'밸류업'에 담긴 지배구조 개선안…韓증시 저평가 탈출 계기되나
쪼개기 상장·일감 몰아주기 등 시장에 설명토록…기업 호응 관건
이달 말부터 자율공시 시작…동종기업 간 비교·분석 강화될 듯


(서울=연합뉴스) 임수정 채새롬 오지은 기자 = 금융당국이 2일 발표한 '밸류업 가이드라인'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온 기업 지배구조 개선안까지 담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쪼개기 상장'이나 대주주의 일감 몰아주기 등 '터널링' 등 이슈가 있을 경우 시장에 자율적으로 설명하도록 했는데, 기업들이 호응·참여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시장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기업 쪼개기 상장 이슈만 해소돼도 주가가 30% 이상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 대주주-일반주주 이해상충 최소화…이사회 적극 참여
금융위원회가 이날 발표한 밸류업 가이드라인은 상장사들이 개별 특성에 맞춰 자율적으로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투자자의 이해편의 및 비교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제시된 것이다.
'기업개요-현황진단-목표설정-계획수립-이행평가-소통' 등 목차별 작성 방법과 원칙에 대해 개괄적인 설명을 담았다.
특히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핵심지표' 선정과 관련해 주가순자산비율(PBR)·주가수익비율(PER)·자기자본이익률(ROE)·배당성향·배당수익률 같은 재무제표뿐 아니라 비재무지표도 강조한 부분이 눈에 띈다.
금융위는 밸류업 제도의 양대 축인 재계(상장사)와 자본시장 간 시각차가 가장 벌어졌던 '지배구조'를 대표적인 비재무지표로 언급했다.
금융위는 가이드라인에서 "비재무적 요소도 중장기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데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부분"이라며 "특히 국내 증시에서 기업가치가 저평가되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지배구조는 대표적인 비재무적 요소일 것"이라고 밝혔다.
금융위는 이와 관련한 예시로 모자회사 중복상장(쪼개기 상장)과 지배주주의 비상장 개인회사 보유 이슈 등을 들었다.
이런 지배구조 이슈로 시장 우려가 있을 경우 대주주와 일반 주주 간 이해상충 우려를 해소할 수 있게끔 정확한 사실관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쪼개기 상장은 핵심 사업부를 자회사로 쪼개 신규 상장하면서 모회사의 기업 가치를 떨어뜨리고, 기존 주주들의 지분 가치가 훼손되는 문제를 낳아왔다.
지난 2022년 LG화학[051910]의 배터리 자회사인 LG에너지솔루션[373220] 상장 직후 주가가 크게 하락한 LG화학이 대표적이다.
카카오[035720]도 카카오게임즈·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 등을 차례로 상장시키면서 개미 투자자들을 울린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배주주의 비상장 개인회사 보유 역시 '터널링'(지배주주 사익을 위해 회사 이익을 빼돌리는 행위) 이슈로 이어질 수 있는 부분으로 지적돼 왔다.
오너 일가가 지분을 많이 소유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고 거기에만 많은 배당금을 뿌린다는 투자자들의 지적이 있을 경우 상장사들은 상세한 설명·소통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러한 재무·비재무적 요소들을 포함한 '밸류업 계획은 이사회가 수립·이행 과정을 감독하고 필요시 의결도 거치도록 했다.
대주주와 일반주주의 이해 상충을 최소화하는 과정에 이사회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것으로 풀이된다.

◇ "결국은 기업이 움직여야"…이르면 이달부터 자율공시 시작
시장 전문가들은 밸류업 계획에 지배구조 이슈가 전면 등장했다는 점에서 한국 증시 저평가 탈출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다만 밸류업 프로그램이 기업 자율성에 상당 부분을 의존하는 만큼 실질적인 참여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모자회사 중복상장 이슈를 공시하도록 한 부분의 경우 정부에서 한국 기업들이 왜 저평가돼 있는지에 대해 원천적인 문제들을 파악했다고 본다"며 "자회사·모회사 지분 관계 등을 투명하게 외부에 알리고 투자자 입장에서는 정보 비대칭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결국 기업들이 움직여야 한다"며 "자율적인 공시를 했을 때 법인세 감면 등 다양한 인센티브가 있어야 실효성 있는 정책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도 "지배주주-일반주주 이해 상충 근절을 위한 쌍방향 소통 강화가 중요하다"며 "모자회사 중복 상장 이슈만 해결돼도 주가가 30% 정도 올라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의견 수렴을 거쳐 밸류업 가이드라인·해설서 제정안을 이달 중 최종 확정·발표할 계획이다.
기업들은 이후 준비가 되는 대로 자율 공시에 나서면 되는데, 이후 '코리아 밸류업 지수' 편입 등을 위해 상당수 기업이 이르면 이달 말이나 내달 초 밸류업 계획을 공시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경우 동일 업종·동종 기업 간 투자자 비교 등이 이뤄지면서 밸류업 공시 확대에 '시장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효섭 실장은 "금융지주나 제약 등 경쟁이 치열한 업종의 경우 빨리 밸류업을 발표해 지수에도 포함되고 세제 혜택도 받으려고 할 것"이라며 "일부가 공시에 나서면 경쟁 기업들이 나설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기업들도 원칙적으로는 공감을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관계자는 이날 발표된 내용에 대해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공감한다"며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주고 제대로 공시를 한 기업에 대해서는 인센티브가 있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sj9974@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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