엿새간 유럽순방 시작…이례적 '공항 도착 연설문'에 상찬 담아
프·EU와 회동서 안보·통상 논의…두 정상, 파리 떠나 '스킨십'도
(파리·런던·베이징=연합뉴스) 송진원 김지연 정성조 특파원 =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일(현지시간) 오후 프랑스에 도착해 엿새 동안의 유럽 순방 일정을 시작했다.
시 주석은 이날 파리 오를리 공항에서 서면으로 발표한 '도착 연설문'에서 "60년 전 중국과 프랑스 양국은 냉전의 장벽을 돌파하고 외교관계를 수립했다"며 "(이후) 시종일관 중국과 서방 관계의 선두를 걸으면서 상이한 사회 제도를 가진 국가가 평화공존·협력호혜 하는 전범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동·서방 문명의 중요한 대표로서 중국과 프랑스는 오랫동안 서로를 흠모·흡수해왔다"며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일찍이 중화 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중국 인민 역시 볼테르, 디드로, 위고, 발자크 등 프랑스 문화의 거장을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다"고 했다.
자국 문화에 자부심이 강한 중국 최고 지도자가 타국 문화를 상찬하는 일은 흔치 않은 만큼 시 주석의 입장문이 관심을 끌었다.
시 주석은 2014년 프랑스 첫 국빈 방문 때도 사르트르, 몽테뉴, 몰리에르, 스탕달, 밀레, 모네, 마네 등 프랑스가 배출한 철학자와 예술가 20여명의 이름을 줄줄이 거론하며 친근감을 강조했었다.
그는 또 "양국 수교 60주년에 즈음해 다시 아름다운 프랑스 땅을 밟으니 더 친근감이 느껴진다"며 "이번 기회를 빌려 나는 삼가 중국 정부와 인민을 대표해 프랑스 정부·인민에 진심어린 인사와 축원을 전한다"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유럽연합(EU)의 견제 속에서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프랑스에 공을 들여왔다는 점을 보여주듯 이날 시 주석은 이례적인 '도착 연설문'에서도 한껏 예의를 갖춘 셈이다.
시 주석의 국빈 방문 일정은 6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마크롱 대통령과 시 주석,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6일 오전 엘리제궁에서 EU와 중국 간 무역 이슈 등을 두고 3자 회담을 한다.
3자 회담에선 최근 중국과 EU 사이의 쟁점으로 떠오른 중러 관계나 유럽 내 중국 간첩 의혹 사건 등 안보 쟁점과 전기차·태양광 패널·풍력터빈 분야의 중국 업체 조사 등 통상 문제가 폭넓게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오후에는 의장대 사열, 중국국가 연주 등 공식 환영 행사가 앵발리드에서 열린다.
환영 행사 뒤 양국 정상은 엘리제궁으로 이동해 정상회담을 연다.
여기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파리 올림픽 기간 우크라이나 전쟁 중단을 위해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요청할 것으로 보인다. 시 주석은 프랑스와의 양자 관계를 다지면서 미국·EU 중심의 '중국 견제' 대열에 균열을 내려 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 주석 방문을 앞두고 이날 현지 신문 라트리뷘과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우리는 (중국과) 상호 호혜를 확보하고 우리 경제 안보 요인들이 고려되기를 바란다"며 "유럽에서는 여전히 중국을 본질적으로 기회의 시장으로 보는 시각이 있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의견이 일치하지는 않는다"라고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프랑스 외교 소식통은 "중국이 유럽 파트너들과 관계 강화를 원한다면 우리의 입장을 들어보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 정상은 회담 결과를 공동 발표한 뒤 양국 경제인이 모인 경제 포럼장에서 폐막연설을 하고, 이후 엘리제궁 국빈 만찬에 참석한다.
국빈 방문 이틀째인 7일 두 정상 부부는 프랑스 남부 오트 피레네로 옮겨 점심을 함께한다. 이곳은 마크롱 대통령의 외할머니가 2013년까지 살던 곳으로 마크롱 대통령이 종종 방문하는 '마음의 고향'이다.
시 주석은 지난해 마크롱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당시 수도 베이징에서 1차 회담을, 베이징에서 약 1천900㎞ 떨어진 남부 광둥성 광저우의 쑹위안(松園)에서 2차 비공식 회담을 마련한 바 있다.
그간 시 주석이 외국 정상을 베이징이 아닌 지역에서 만난 사례가 국경 갈등을 풀 외교적 목표가 있었던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나 개인적 친분이 두터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시 중국의 안배는 마크롱 대통령을 향한 '극진한 대접'으로 해석됐다.
프랑스 측이 준비한 '파리 밖 일정'은 작년 마크롱 대통령 초청에 대한 보답 차원이자 개인적 친밀감을 높이려는 사교 행사로 보인다.
시 주석은 프랑스에 이어 세르비아와 헝가리를 방문한다. 세르비아와 헝가리 역시 중국에 우호적인 유럽 국가로 꼽힌다.
그의 유럽 방문은 이탈리아·모나코·프랑스 등 3개국 방문에 나섰던 2019년 3월 이후 5년여 만이다.
cherora@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