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신평 크레딧 세미나…"신세계·CJ, 내수부진·경쟁심화에 재무부담 지속"
작년 말 11개 건설사 책임준공 약정 61조원…자본총계 2배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석유화학산업과 내수산업을 영위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재무 부담이 당분간 지속되며 신용도 저하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신용평가사의 전망이 나왔다.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는 9일 한국거래소 여의도 사옥에서 '2024 크레딧 세미나'를 개최하고 석유화학산업 장기불황과 국내 실물경기 하강 등에 따른 SK, LG, 롯데, 한화, 신세계, CJ 등 주요 그룹의 신용 리스크를 이같이 진단했다.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는 프로젝트파이낸싱(PF) 직접 보증보다 위험도가 낮은 책임준공 약정 관련 리스크를 키워 건설사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글로벌 석유화학 구조 재편…구조조정 본격화"
나신평은 과거 약 15년간 한국 석화산업을 이끌어온 대중국 수출의 회복이 불투명해지고 있어 산업 전체가 구조 개편에 맞닥뜨린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김서연 수석연구원은 "향후 노후 나프타분해시설(NCC)을 중심으로 회사 간 설비 통합, 유휴 설비의 매각, 가동 축소를 비롯한 사업 개편 속도가 점차 빨라질 것"이라며 열위한 원료 경쟁력, 주요 시장 내 사업기반 약화, 높아진 국내 경쟁 강도 등 때문에 사업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기업들은 경쟁력 저하에 대응하고자 정밀화학 제품에 투자를 진행하고 배터리 등 비석유화학 부문으로 사업 범위를 확대하고 있으나, 여기에는 막대한 자금 투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 연구원은 "석유화학사들은 투자자금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기"라며 "외부 차입을 비롯해 보유 자산 매각이나 신종자본증권 발행 등 다양한 형태의 자금조달이 이뤄지고 있으나 재무 부담은 대체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이어 "더욱이 사업 재편을 위해 추진하고 있는 신규사업은 가시적인 수익 창출에 시일이 필요하다"며 "재무 부담 증가가 지속되는 가운데 투자자금 회수에 있어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신용위험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룹별 신용 이슈를 보면, SK그룹의 경우 배터리와 친환경 에너지·첨단소재 분야 투자 부담이 있어 이익창출력 대비 높은 채무 부담이 지속되겠으나, 올해 반도체 부문 호실적과 정유·통신·발전 부문의 안정적 이익창출력, 그룹 차원의 재무안정성 관리 기류에 그룹 신용위험은 작년보다 완화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석유화학과 디스플레이 부문 실적이 크게 저하된 LG그룹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영업현금흐름을 상회하는 연 9조원 이상의 투자가 예정돼 있다며 재무 부담 관리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안수진 연구원은 "LG그룹 영업이익은 2018년 7조2천억원에서 2023년 5조6천억원으로 1조7천억원 감소했으나 그룹 전체 순차입금은 2018년 말 18조4천억원에서 2023년 말 36조9천억원으로 증가했다"며 "전자·통신 부문의 안정적인 이익창출력과 배터리 부문의 이익창출력 제고, 유상증자·자산매각 등 다양한 자금조달 등을 바탕으로 차입금 증가 수준을 조절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나신평은 석유화학 부문이 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롯데그룹 역시 그룹 전체 순차입금이 증가(2021년 말 24조8천억원→2023년 말 34조2천억원)한 상황에서 유통·호텔 부문의 경쟁력 약화로 수익성 개선 여력은 제한적이라고 짚었다.
문아영 연구원은 "롯데그룹은 포트폴리오 전환을 위한 투자와 동시에 부진 사업 매각을 통한 사업구조 재편 추진 중이나 성과 여부와 시점이 불투명하다"며 롯데케미칼[011170]의 신용위험 확대는 그룹 신용도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화그룹은 석유화학 부문과 태양광 부문의 실적 회복이 지연되겠으나, 방산·조선 부문의 수주 잔고 증가 등에 힘입어 그룹 전체의 실적을 보완할 것으로 봤다.
◇ "소비 부진 장기화·내수산업 구조적 업황 저하"
나신평은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현상으로 민간 소비 부진이 장기화하며, 이는 소매유통업 등 내수산업의 구조적 업황 저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분석했다.
온라인 유통업체 쿠팡의 공격적 투자와 알리·테무·쉬인 등 중국 이커머스 기업들의 시장 잠식 등 모객 경쟁이 심화하는 경향을 고려하면, 대규모 투자가 유통업체들에 재무 부담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윤성국 연구원은 신세계 그룹에 대해 "그룹 매출액 중 유통업 비중이 75%, 내수시장 비중이 90%로 집중된 사업구조를 지니고 있다"며 "내수 부진 장기화와 건설 부문 사업기반 약화 등 주력 사업 관련 부정적 영업환경이 지속되고 있다"고 짚었다.
G마켓과 SCK컴퍼니(옛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지분 인수 등 대규모 투자 집행으로 2021년 이후 재무 레버리지가 상승했고 영업현금흐름 창출력 저하 등으로 과거보다 높은 재무 부담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J그룹은 과거 식품(제일제당), 유통(대한통운·올리브영·홈쇼핑), 미디어(ENM, CGV) 등 내수 위주의 사업구조를 보유했으나 2017∼2023년 전 영역에서 해외 인수·합병(M&A)을 추진했다.
다만 미국 식품회사 슈완스와 미국 제작사 피프스시즌 인수 등 대규모 투자를 집행해 외부 차입이 늘어났고, 2018년 이후 그룹의 채무 부담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 작년 말 11개 건설사 책임준공 약정 61조…"추가 자금 소요 가능성"
작년 말 기준 현대건설, GS건설,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대우건설 등 11개 주요 건설사의 합산 책임준공 약정액은 약 61조원으로, 자본총계(31조원)의 2배에 달했다.
건설사 책임준공은 정해진 기한 내에 목적물을 준공하면 우발채무 부담에서 벗어나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위험도가 낮지만, 정상적인 사업 진행이 어려워지면 책임준공 약정 미이행에 따라 우발채무가 현실화할 수 있다.
육성훈 연구원은 "부동산 개발사업의 수익성 전망이 양호할 경우에는 건물 준공을 통한 높은 대출원리금 회수 가능성을 감안해 일반적으로 대주는 건설사와 준공 기한 연장 등의 합의를 통해 공사를 지속할 수 있다"며 "반면 낮은 분양률로 인해 수익성 전망이 불확실할 경우 대주는 즉시 건설사에 책임준공약정 미이행 의무를 부과하여 대출원리금을 회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신평이 공정이 지연되고 있는 책임준공 약정 현장을 살펴본 결과, 도급 사업의 32.2%가 지연 상태에 해당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육 연구원은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낮은 것으로 분류됐던 건설사 책임준공약정과 관련해서도 추가적인 자금 소요가 발생할 수 있는 점은 건설업황에 부정적인 요인"이라며 롯데건설, 코오롱글로벌, HL디앤아이한라의 재무 부담 추이에 대한 모니터링을 지속하겠다고 밝혔다.
내주 초 발표될 당국의 PF 정상화 방안과 관련해선 "건설사의 경우 금융사와 다르게 통상 중후순위 신용보강을 쓰는 경우가 많아 내용에 따라 금융보증 비용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nora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