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불참' 푸틴 취임식에 대사 보낸 프랑스 속내는

입력 2024-05-09 19:40  

'서방 불참' 푸틴 취임식에 대사 보낸 프랑스 속내는
러 대선 '비민주적' 비판 뒤 취임식 참석에 "역설적"
유럽 통합 외친 마크롱, 스스로 대오 깨트렸다는 지적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 비판에 앞장서 온 프랑스가 지난 7일(현지시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5기 취임식에 주러시아 대사를 참석시켰다.
서방 대부분의 대사가 불참했고, 최근 몇 달간 프랑스가 러시아에 보인 강경한입장을 고려하면 의외의 판단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엔 러시아에 우호적인 헝가리, 슬로바키아 외에 중립국인 몰타, 키프로스와 그리스만이 참석했다. 주요 7개국(G7) 중에서도 프랑스만 유일하게 참석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지상군 파병 가능성을 거론하며 돌출 행동을 하더니 이번에도 동맹국들과 사전 조율 없는 '나홀로' 행보를 보인 셈이다.
일간 르몽드는 8일 사설에서 프랑스가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것은 여러 면에서 '놀라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우선 프랑스는 다른 서방 국가와 마찬가지로 지난 3월 푸틴 대통령이 압승한 러시아 대통령 선거의 정당성을 문제 삼았다.
당시 외무부는 성명에서 "러시아의 선거는 자유롭고 다원적인 민주주의 선거의 조건에 못 미쳤다"며 "정치적 기본권에 대한 공격에 저항해 평화롭게 반대를 표명한 많은 러시아 시민의 용기에 경의를 표한다"고 밝혔다.
비민주적인 선거로 당선된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에 대사를 보내 축하한 건 역설적인 일이라고 르몽드는 지적했다.
르몽드는 프랑스가 EU 회원국 대다수가 보이콧한 취임식에 참석함으로써 그동안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끊임없이 강조해 온 유럽 통합, 단일 대오를 스스로 깨트렸다고도 비판했다.
이런 식으로 EU의 내부 분열 양상을 드러내 러시아에 역으로 이용당할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자국 대사가 취임식 전날인 6일 러시아 외무부에 초치돼 양측 외무부가 신경전을 벌여놓고 하루 만에 푸틴 대통령 취임식에 프랑스가 참석한 것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 대목이다.
이날 러시아 외무부는 마크롱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파병 가능성 발언 등을 또다시 문제 삼으며 프랑스를 비난했고, 이에 맞서 프랑스 외무부는 "러시아가 다시 한번 정보 조작과 협박에 외교 채널을 사용하고 있다"고 대사 초치에 항의했다.
프랑스 정부 측은 대사의 취임식 참석을 정당화하기 위해 "러시아와 모든 연결 고리를 끊진 않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에 강경 발언은 이어가되 대화의 창은 열어두겠다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번 참석 역시 마크롱 대통령이 그동안 러시아에 취해 온 '전략적 모호성'의 일환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르몽드는 그러나 "러시아가 다시 한번 핵 위협을 제기하며 목소리를 높인 그 순간에 유럽 파트너들과의 조율 없이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최근 몇 달 동안 프랑스가 취해 온 매우 확고한 입장과 모순되며 이는 '전략'보다 '모호함'을 더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엑스(X·옛 트위터)의 한 친우크라이나 계정은 푸틴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EU 국가의 국기를 이모티콘으로 나열하면서 "전형적인 러시아 인형들이지만 가장 실망스러운 건 프랑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계정은 마크롱 대통령이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러시아나 러시아 국민과 전쟁 중이 아니며, 모스크바의 정권 교체를 추구하지도 않는다"고 한 발언과 함께 프랑스 대사 참석 소식을 전하며 "누군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비꼬았다.
san@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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