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전략 변했다 "우량주 장기투자 옛말, 초단타매매 성행"

입력 2024-05-12 08:00  

외국인 투자전략 변했다 "우량주 장기투자 옛말, 초단타매매 성행"
증권학회 논문…"종목수↑·거래종목 시총↓·당일매매 비중↑"
"고빈도 알고리즘 투자사들, 미국·유럽서 아시아로 이동 중"



(서울=연합뉴스) 송은경 기자 =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증시 투자 전략이 소수의 우량주를 매수하고 장기 보유하는 가치투자에서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High Frequency Trading·HFT)로 불리는 초단타 매매로 변화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12일 한국증권학회지 최근호에 실린 논문 '외국인 주도세력의 투자전략 변화: 가치투자에서 고빈도 알고리즘'에 따르면, 우민철 한국거래소 시장감시부 팀장과 엄윤성 한성대 교수는 2005년부터 2022년까지 17년 동안 유가증권·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전 종목을 대상으로 외국인의 매매내역을 분석해 이 같은 결과를 제시했다.
가치투자가 저평가된 종목을 매수하고 보유하는 중장기 투자전략을 사용한다면,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는 기업의 적정 가치를 분석하기보다 종목의 단기 움직임에 집중하고 인공지능(AI) 기반의 알고리즘을 이용한 주문방식으로 다수의 종목에 투자하는 것이 특징이다.
논문 저자들은 2005년부터 2022년까지를 5개 구간으로 나누고, 시기별 거래대금 상위 10개 외국인 계좌의 매매양태를 분석한 뒤 나머지 시기와 비교했다.
2005∼2008년 상위 10개 계좌는 각자 일평균 최대 120개 미만의 종목을 거래했으며 거래금액은 29조∼47조원 수준이었다.
시간이 흘러 2012∼2016년 구간에서는 1천종목 이상을 거래하는 계좌가 상위 10위권 안에 들기 시작했고, 이들은 2016∼2019년, 2020∼2022년 구간에서도 거래대금 상위권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각 구간 상위 10개 계좌가 전체 외국인 거래대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점차 커졌다. 2005∼2008년에는 20.13%였으나 2020∼2022년에는 41.35%에 달했다.
각 시기의 상위 10개 외국인 계좌가 매매한 종목들의 시가총액이 감소하는 추세도 관찰됐다.
구간별 상위 10개 계좌에서 거래한 종목들의 시가총액을 단순 평균한 결과, 2005∼2008년에는 8조7천125억원에 달했으나 2020∼2022년에는 평균 2조2천231억원짜리 종목을 매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첫 번째 시기(2005∼2008년)에 상위 10개 계좌의 데이트레이딩(당일 매수·매도) 비중은 5.02%에 불과했으나, 가장 최근 시기(2020∼2022년)에는 9.97%로 상승했다. 한 특정 계좌의 데이트레이딩 비중은 23.21%에 달하기도 했다.
연구진은 "외국인 주도세력이 거래한 종목들의 시가총액이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을 근거로 외국인 주도세력이 교체됐다고 단정할 순 없다"면서도 "그러나 상위 10개 계좌가 거래한 종목 수가 소수 우량주에서 다수 종목으로 확장됐고 거래 종목들의 시가총액도 급격하게 감소했다는 것은 '가치투자자' 외국인에서 '고빈도 알고리즘 투자자' 외국인으로 주도세력이 변경됐다면 나타날 수 있는 결과"라고 설명했다.



◇ "해외 규제 피해 아시아로 이동하는 HFT…당국 나서야"
이번 실증연구는 '국내 증시에 참여하는 외국인은 시가총액이 크고 변동성이 작은 우량주 위주로 장기투자한다'는 기존 통념을 뒤집는 것이기도 하다.
논문 저자들은 "외국인은 대규모 자금을 소수의 우량주에 투자해 중·장기로 운용하는 정보거래자라고 인식되고 있다"며 "본 연구는 외국인의 매매양태가 초단기 알고리즘을 이용한 단기성 매매전략으로 전환되고 있는 시점에 거래대금 기준으로 주도세력이 변하고 있음을 증명한 첫 연구"라고 강조했다.
국내에서 잘 알려진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 사례로는 2017년 시타델증권의 시장질서 교란행위가 있다.
미국의 대형 헤지펀드 시타델의 계열사 시타델증권은 2017년 10월부터 2018년 5월까지 메릴린치증권 서울지점을 통해 국내 주식 총 264개 종목(총 6천796개 매매구간)에서 대규모 허수성 주문을 쏟아내 호가 상승을 유발한 뒤 단시간에 주문을 취소하는 행위를 반복했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1월 시타델증권이 초단타 매매로 시장질서 교란행위를 했다고 보고 119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국내에서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를 수행하다가 시장질서 교란행위로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은 시타델증권이 처음이었다.
논문에 따르면 해외 고빈도 알고리즘 투자자는 미국·유럽에서 아시아 시장으로 이동하는 추세다.
저자들은 해외 연구 데이터를 인용하며 "미국의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에 대한 규제 강화와 시장 포화로 인한 수익성 약화 때문에 관련 회사들이 싱가포르, 일본 등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며 "국내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자의 아시아태평양 임원들과 면담한 결과 전 세계 많은 고빈도 알고리즘 매매 회사들이 한국 등 신흥 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이차전지와 초전도체 등 테마주들의 장중 주가 '널뛰기'에 변동성이 커지면서 시장에서는 외국 헤지펀드의 알고리즘 매매가 원인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작년 8월 8일 초전도체 테마주들이 같은 시각에 주가가 일제히 폭락했는데, 일각에선 '제2의 시타델 교란 사태'를 의심하며 당국의 과감한 조치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이번 논문 저자들 역시 "금융 당국도 외국인에 대한 다양한 인식과 시장 영향력에 대한 추가적인 견해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nora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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