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파 갈등에 양국 파트너십 암운…"자국 대사 철수 저울질"
"양국, 평화협정 체결 45년만에 최악의 위기"…"압박 수단" 관측도
(서울=연합뉴스) 김정은 기자 =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 지상전을 둘러싸고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긴장이 조성되면서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한 지 45년 만에 외교관계 격하를 검토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집트 당국자들은 이스라엘 텔아비브 주재 자국 대사를 철수시킴으로써 이스라엘과의 외교관계를 격하시키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아랍권의 군사, 정치, 문화 중심지인 이집트는 1979년 미국의 중재로 아랍 국가 중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이집트는 이를 기반으로 다른 아랍권 국가보다는 상대적으로 이스라엘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재자로 역할하곤 했다.
이번 전쟁 중에도 자국 국경과 접해있는 가자지구 주민을 위한 구호품 반입에 협조했고 미국, 카타르와 함께 휴전 협상을 중재하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이 이집트와 접해있는 라파에 대한 군사적 압박 강도를 높이자 이집트는 자국 국경을 폐쇄하고 구호품 전달에도 협력하지 않겠다면서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다.
이집트는 라파 공격으로 평화협정이 위협받고 있다며 라파 공세를 멈춰야 한다는 입장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는 지난 12일에는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심리 중인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대이스라엘 소송에도 동참하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남아공은 지난해 12월 29일 이스라엘을 집단학살 혐의로 ICJ에 제소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긴급조치를 재판소에 요청하고 있다.
이 같은 양국 관계 경색은 이스라엘이 최근 라파에서 군사 작전에 들어가면서 불과 몇시간 전에야 이 같은 사실을 이집트에 알리면서 시작됐다고 WSJ은 전했다. 이스라엘은 당시 작전을 통해 라파에 있는 팔레스타인쪽 국경검문소를 장악했다.
지난 6일 이집트 정보 당국자들에게 전달된 이스라엘 측의 이 같은 갑작스러운 메시지는 특히 양국이 라파 공격을 두고 수개월간 신중한 협상을 벌인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스라엘은 앞서 이집트에 라파 공격 계획에 대해 설명하면서 라파 국경 통로는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이집트 측에 장담했지만 결국 지켜지지 않은 것이라고 한 이집트 당국자는 말했다.
이집트의 한 전직 의원은 현재 양국의 갈등은 평화협정 체결 이래 최악의 위기라면서 "신뢰 부족이며 상호 간에 일종의 의심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다만 또 다른 이집트 당국자는 1979년 평화협정으로 이어진 캠프데이비드 협정을 언급하면서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버리거나 관계를 중단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스라엘군이 라파 검문소에 남아있는 한, 이집트는 트럭 한 대도 라파로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자지구와 이집트의 국경에 있는 라파 검문소는 이스라엘에 의해 봉쇄된 가자지구와 외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로, 이집트에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상대로 쓸 수 있는 지렛대이자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연대를 보여주는 핵심 수단으로 여겨졌다.
이스라엘은 라파 검문소 장악으로 이 같은 수단을 없애 이집트를 화나게 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집트는 이미 이번 전쟁으로 경제적, 정치적 압박을 받아왔다.
220만명 인구의 가자지구 주민이 피란에 나서면서 이집트는 이들이 대거 자국으로 유입될까 우려해왔다.
또 예멘 반군 후티가 하마스를 지지한다는 명분으로 홍해에서 선박들을 공격, 선박들이 다른 항로로 우회하면서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에서 징수하던 통과 수수료도 거의 반토막이 났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이집트의 경제에 더욱 부담이 되고 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 있는 싱크탱크 카네기중동센터 선임연구원 예지드 사이그는 "이집트에는 위험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면서 "그들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의 이익나 조언은 고려하지 않는 데 대해 엄청나게 분개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분석가들은 이집트와 이스라엘 모두 평화협정을 유지하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이집트의 ICJ 제소 동참 등 외교적 조치는 관계를 완전히 끊지는 않으면서 이스라엘과 미국을 압박하는 수단 중 하나라고 말했다.
k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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