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대전환] ④ "승자독식 산업서 자유무역 고수하다 국내기업 없어질 수도"

입력 2024-05-19 06:01  

[통상 대전환] ④ "승자독식 산업서 자유무역 고수하다 국내기업 없어질 수도"
허윤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장 "정부, 산업별 맞춤형 지원책 필요해야"
"미국내 '한국은 중국산 우회 수출기지' 부당한 인식 줄여나가야"
"첨단산업서 한미일 협력 선명…전략적 선명성 매몰보단 중국과도 협력을"



(서울=연합뉴스) 이슬기 기자 = 허윤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장(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은 19일 "승자독식의 특성을 가진 글로벌 산업에 대해 정부가 자유무역을 고수할 경우 정신을 차리면 자칫 국내 기업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허 위원장은 이날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미국의 아마존, 애플, 메타 등 디지털 기반 글로벌 플랫폼들의 최근 상황을 거론하면서 "정부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입지를 분석하고, 이에 따른 산업별 맞춤형 지원책을 내놔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허 위원장은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정부가 한미일 첨단산업 협력을 강화하고 있는 데 대해 "정부가 미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정책의 선명성을 명확히 했다"며 "중국과는 사안별·이슈별로 협력하는 구도를 갖춰 전략적 유연성을 확보하는 게 국익에 부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허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현재 우리나라의 통상 환경을 진단한다면.
▲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으로, 규범 위주에서 힘 위주로, 다자주의에서 일방주의로 글로벌 경제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로 이끌 강한 지도자를 선호하는 정치 풍토와 함께 중국 경제의 과잉 생산으로 인한 시장 왜곡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탈세계화 시대다. 이런 변화는 향후 30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 중국은 첨단기술에서 한국의 잠재적 경쟁자다. 미국의 대중(對中) 견제가 한국에게 기회 요인이 될 수 있을까.
▲ 미국의 견제로 중국 기술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게 된 것은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입지에 유리한 측면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두 가지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첫째는 범용제품 수출시장으로서 중국은 여전히 매력적이고 유효하다는 측면이다. 둘째는 미국의 중국 견제·제재의 영향으로부터 한국 기업들이 앞으로도 과연 자유로울 수 있을지 우려가 된다는 점이다.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한국이 해운과 컴퓨터 산업 등을 가져갔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한국은 통상정책에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 한국으로서는 미국의 주요 수출품인 기계류, 농산물, 에너지, 화학-플라스틱 제품 등으로 수입선을 전환해 무역수지 흑자 폭을 관리하는 것이 방법이다.
사실 대미(對美) 무역수지 흑자는 미국에 한국 기업이 투자를 많이 해서 부품 등 중간재 수출이 늘어나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워싱턴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한국의 입장을 효과적으로 대변할 워싱턴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한국이 중국산 우회 수출 기지'라는 등의 워싱턴 내 부당한 인식을 줄여나가야 할 때다.
-- 주요국들은 첨단산업에 직접 보조금을 투입하고 글로벌 경제가 블록화·요새화하고 있다. 한국이 취해야 할 효과적인 정책은.
▲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등 거대 시장을 가진 외국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공급망 안정화 등의 명확한 목표를 위해 자국 내 투자기업에 보조금을 지원하는 경우와 한국처럼 자체 시장 규모가 작고 해외 시장을 위주로 비즈니스 해야 하는 나라의 입장이 다를 수 있다. 국내 보조금이 까다로운 조건을 달고 있을 경우 잘못하면 한국 기업의 글로벌 사업에 제약 요인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 글로벌 기업 경쟁 속에 한국 기업이 사라질 수도 있나.
▲ 디지털 기반 플랫폼 기업들은 글로벌 챔피언이 되면 타국 내 챔피언마저 잠식하는 성격이 있다. 이런 특성의 산업에 대해 정부가 자유무역주의를 고수하다가 정신 차리면 국내 기업들은 전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 글로벌 시장 내 한국 기업의 입지를 분석하고 산업별 맞춤형 지원책들이 필요하다. 일괄적인 정책으론 쉽지 않은 상황이다.
--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국내 산업 공동화 우려가 있다. 대만과 일본의 반도체 협력과 미일동맹 업그레이드와 맞물린 일본의 반도체 재굴기도 위협 요인이다.
▲ 한국 글로벌 기업은 거대 시장을 가진 외국 정부의 각종 규제 및 인센티브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2017년 트럼프 집권 이후에는 주요국의 정책과 지정학적·지경학적 갈등이 기업 활동의 큰 변수로 떠올랐다. 기업 차원에서 대책을 세우기 어려운 수많은 정책과 법안이 매일 쏟아져 나온다. 정부의 역할이 더 커진 것이다.
-- 이 시점에 정부의 구체적인 역할은.
▲ 핵심 공급망 안정화, 국내 데이터·인프라·첨단기술 보호, 미래첨단기술 육성이 필수적이다. 산·관·학이 똘똘 뭉쳐 쉽사리 무너지지 않는 제도화된 협력체를 만들고 글로벌 거대 파고를 넘어야 한다.
또 많은 나라가 첨단기술 중심으로 연대하는 과정에서 한국도 소외돼선 안 된다. 우리가 경쟁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면 글로벌 협력체에 함께할 수 있다.
상대국들의 보조금을 고려하면 우리도 전향적인 산업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 다만 기업의 수요에 대한 상향식 접근이 중요하다. 공급망 기본법이 다음 달부터 시행되면서 올해 5조원대 펀드를 확보해 내년부터는 10조원이 지원된다. 이게 큰돈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해외 광산 하나만 사도 10조원인데 지금보다 훨씬 스케일이 큰 대체 공급망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 현재 한국은 첨단산업에서 미·일과 손잡은 모양새다.
▲ 정부가 한미, 한일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했고, 이것이 대중 관계에서도 큰 레버리지(지렛대)로 작동하고 있다. 정부가 외교 전략적 선명성을 명확히 한 것은 굉장히 잘한 부분이다. 다만 너무 전략적 선명성에 매몰되면 안 된다. 중국은 지향하는 가치는 다를지라도 이웃 국가이자 거대 소비시장이어서 앞으로도 상당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wise@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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