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 발현 등에 대한 판단 등급 3개→6개 확대
초자연적 현상에 끌리는 일반 신자 신속한 보호 가능해져
(바티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 교황청이 17일(현지시간) 성모 발현과 같은 초자연적 현상을 평가하기 위한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
교황청 신앙교리부 장관인 빅트로 마누엘 페르난데스 추기경은 이날 공식 홈페이지에 올린 성명에서 오는 19일부터 적용되는 이 규정이 1978년 바오로 6세 교황이 발표한 이전 규정을 완전히 대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전 규정에선 초자연적인 현상에 대해 선언, 부정, 심사중 등 3가지 판단 등급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결론이 나기까지 길게는 수십 년이 걸렸다.
페르난데스 추기경은 1950년 이후 초자연성이라는 명확하게 결론이 난 사례는 단 6건에 불과했다며 수천건의 초자연적 현상 가운데 극소수의 사례만이 인정받았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가 도래하면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이 확산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심사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현 규정으로는 일반 신자의 혼란과 범죄 피해를 막을 수 없다고 판단한 교황청은 보다 신속하게 초자연적 현상을 평가할 수 있도록 새 규정을 도입했다.
새 규정은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판단 등급을 기존의 3개에서 6개로 크게 늘렸다. 주교들이 '반대 없음'(Nihil Obstat)부터 '순례 제한' 또는 '금지' 조치까지 6가지의 다양한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됐다.
가장 중요한 건 6가지 판단 등급에서 초자연성 선언이 빠졌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교구가 초자연성을 선언한 뒤 교황청이 이를 부정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새 규정 도입에 따라 오직 교황만이 예외적인 방식으로 초자연성을 선언할 수 있게 됐다고 안사(ANSA) 통신은 전했다.
교황청은 초자연적 종교 현상이라고 꾸며 이익을 취하려는 사기 범죄에서 신자를 보호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이와 동시에 이러한 예외적인 현상으로 신앙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못한다.
교황청은 이러한 상충하는 요구 속에서 초자연적 현상에 신중하게 접근하되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이상 이에 지나치게 개입하지 않는 방식으로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보인다.
페르난데스 추기경은 "새롭게 등장하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관련한) 모든 주장을 부정하려는 의도는 아니다"라며 "6가지 판단 등급은 성령을 통제하거나 억압하려는 뜻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성모 발현이란 성모 마리아가 나타난 초자연적 현상을 말하며 가톨릭교회는 세계 여러 곳에서 나타난 성모 발현을 인정한다.
가장 유명한 곳이 포르투갈의 시골 마을 파티마다.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3명의 어린 목동 앞에 성모 마리아가 모습을 나타냈다는 곳으로, 바티칸에서 인정한 세계 3대 성모 발현지 중 한 곳이다.
그런가 하면 이탈리아 로마 북부 브라치아노 호숫가에 있는 트레비냐노 마을에서는 피눈물을 흘리는 성모 마리아상으로 순례자를 끌어모은 한 여성이 '돼지 피 조작 논란'에 휩싸이자 돌연 자취를 감추는 일도 벌어졌다.
교황은 지난해 6월 이탈리아의 TV 종교 프로그램에 출연해 "성모 발현이 항상 진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성모 마리아는 결코 자신에게 관심이 쏠리도록 하지 않는다. 나는 손가락으로 예수를 가리키는 성모를 보고 싶다"며 "성모 신심 그 자체에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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