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이란 이인자, 최고지도자 물망 '강경보수'
검사시절 숙청 주도, '테헤란의 도살자' 별명…히잡 시위도 강경진압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도 강경파 외교관 출신
(베를린·서울=연합뉴스) 김계연 특파원 신재우 기자 =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20일(현지시간) 공식 확인된 에브라힘 라이시(63) 이란 대통령은 성직자이자 법조인 출신의 강경보수 성향 정치인이다.
36년째 재직 중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85)에 이은 사실상 2인자이며,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된 인물이기도 하다. AP통신은 라이시 대통령을 하메네이의 "제자"라고 표현했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잠재적 후계자"라고 칭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1960년 12월 이슬람 시아파의 최대 성지중 하나인 마슈하드 인근에서 성직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10대 때 현재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에게 신학도시 곰에서 신학을 배우고 1979년 이슬람혁명 전 팔레비 왕정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이슬람혁명 2년 뒤인 1981년 스무살의 나이로 테헤란 인근 카라즈에서 검사 생활을 시작했다. 테헤란 검찰청장과 검찰총장에 이어 2019년 대법원장에 해당하는 사법부 수장에 올랐다.
검찰 재직 당시 반체제 인사 숙청 작업을 이끌었다.
이란·이라크 전쟁 직후인 1988년 이라크에 부역했다는 이유로 반정부 단체인 이란인민무자헤딘기구(PMOI) 조직원들을 처형한 이른바 '호메이니 학살'에 기소위원으로 참여했다. 국제앰네스티는 당시 약 5천명이 사형 집행된 것으로 추산했다. 2009년 대통령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 '녹색 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데도 앞장섰다.
서방과 이스라엘은 검사 시절 숙청 작업을 주도한 그를 '테헤란의 도살자'라고 부른다.
미국 행정부는 라이시 사법부가 청소년 범죄에 사형을 선고·집행하고 죄수를 고문하는 등 비인간적으로 대한다는 이유로 2019년 그를 제재 목록에 올렸다.
그는 2017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하산 로하니 당시 대통령에게 져 낙선했다. 2021년 재도전해 득표율 61.9%로 개혁파와 혁명수비대 출신 후보를 꺾고 8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라이시 대통령의 취임은 새로운 강경시대를 알리는 신호로 여겨졌다.
그의 취임 후 이란과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당시 미국 대통령이 2018년 일방적으로 파기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원 협상에 나섰지만 이란이 핵시설 사찰에 제한을 걸면서 논의는 중단됐다.
이란은 그 과정에서 우라늄 농도를 60%까지 높였고 비축량도 늘렸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이란의 핵무기 제조 능력이 빠르게 강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란 정가에서는 그를 유력한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로 꼽아왔다.
하메네이는 2016년 법무장관을 지냈던 라이시를 이란 최고의 종교재단인 '이맘 레자' 대표로 임명하면서 "세간의 이목을 끄는 경험을 가진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를 두고 라이시가 모든 국가 문제에 대해 최종 결정권을 갖는 이란의 세번째 최고지도자로 육성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라이시는 최고지도자의 사망 또는 유고 시 후임을 결정하는 국가지도자운영회 부의장이기도 했다.
그가 쓰는 검은 터번과 이름 앞에 붙는 '세예드'라는 호칭은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의미다. 이런 집안 배경과 더불어 출신지가 이란의 '종교 수도' 마슈하드이기도 해 보수 종교계가 그의 핵심 지지 기반이다.
정치적으로는 성차별과 사형제, 인터넷 검열을 지지하고 미국 등 서방,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강경보수로 평가받는다.
이란 당국은 라이시 대통령 취임 이듬해인 2022년 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마흐사 아미니 사건으로 전국에서 '히잡 시위'가 확산하자 발포하며 강경 진압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당시 미국이 혼란과 테러를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엔 인권이사회 조사단은 시위대 551명이 사망했고 1천500명 넘게 체포됐다고 발표했다.
인권단체 이란인권(IHR)과 '사형 제도 폐지를 위해 하나로'(ECPM)는 지난해 이란에서 집행된 처형이 모두 834건으로 2015년 이후 가장 많았다고 주장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핵 합의가 파탄난 후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지 않은 채로 지난해 오랜 숙적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외교관계를 복원하는 한편 중국과 25년간 경제·안보·군사 분야에서의 협력을 약속하는 장기협정을 체결하는 등 외교 행보를 이어갔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자주 만났고, 러시아가 2022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후에는 군용 드론(무인기)을 대거 공급했다.
라이시 대통령 치하에서도 이란은 하마스, 헤즈볼라, 후티 등 '저항의 축'으로 불리는 친(親)이란 대리 세력을 이용해 이스라엘을 계속 견제해왔다.
작년 10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자 이란은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시리아 주재 영사관을 폭격하자 지난 4월13일 밤 사상 처음으로 이스라엘 본토를 공격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이를 통해 초강경 이미지를 더욱 굳혔다.
헬기 사고로 함께 숨진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외무장관(60)도 반이스라엘 정서를 숨기지 않았던 강경파 색깔이 진한 외교관이었다.
라이시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외무장관으로 임명된 그는 미국의 제재를 극복하려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집중했다.
그는 외교관 경력 전반에 걸쳐 이란 혁명수비대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했고, 2020년 미국 폭격으로 사망한 이란의 '국민영웅'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과도 친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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