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보건규칙 원론적 합의…법적 구속력 갖춘 팬데믹 협약은 절충점 못찾아
(제네바=연합뉴스) 안희 특파원 =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대유행에 신속하게 공동대응하기 위한 국제사회의 논의가 원칙적으론 방향을 잡아가지만 각국의 이해관계가 걸린 협약 내용을 놓고는 이견이 여전하다.
이달 말 세계보건기구(WHO) 회원국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제77차 세계보건총회에서도 원론적 합의 내용만 발표될 뿐 백신 개발과 이익공유 등 예민한 사항을 담은 협약이 완전한 틀을 갖춰 만들어지기는 어려울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20일(현지시간) WHO 등에 따르면 세계적 감염병 대유행(팬데믹)을 대비한 국제사회의 공동 규범을 만드는 작업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돼왔다.
감염병 대처를 위한 국제보건규칙(IHR)을 개정하는 작업과 팬데믹 공동대응을 위한 새 협약(팬데믹 국제협약)을 제정하는 일이다.
1969년 처음 제정되고 2005년 한차례 개정된 IHR은 콜레라 등 이미 국제사회가 대응 수단이 있는 감염병까지 모두 함께 다루는 규칙이다.
코로나19처럼 예상 못 한 파괴력으로 전 세계를 보건 위기에 빠뜨린 새 감염병에 신속하게 대응하려면 기존 IHR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개정 작업이 진행돼왔다. 개정 작업을 위한 실무그룹(WGIHR)이 8차례에 걸쳐 회의를 했다.
팬데믹 국제협약은 코로나19처럼 대응 수단이 전혀 없는 새롭고 강력한 감염병이 갑자기 발발하는 상황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신규 감염병 대응체계를 다룬다는 점 외에도 협약 내용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해 강력한 집행력을 갖추자는 게 IHR과 다른 점이다. 팬데믹 국제협약은 각 회원국 의회가 비준해야 한다.
IHR 개정안과 팬데믹 국제협약은 모두 코로나19로부터 얻은 교훈에서 논의가 시작됐기 때문에 서로 겹치는 내용이 많다.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초동 대응이 늦었고 백신 허가와 보급 등이 질서 있게 추진되지 못했다는 비판이 논의의 출발점이다.
팬데믹 비상사태를 어떻게 정의하고 이 사태를 해결하는 데 유효한 의료품은 무엇으로 규정할지에서부터 팬데믹 국면에서 각국의 의료 역량 격차를 해소할 방안까지 하나하나를 두고 세계 각국의 대표들이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최종 마감 시한은 세계보건총회가 열리는 오는 27일이지만 논의는 난항을 거듭했다. 그러다가 WHO는 지난 18일 IHR 개정안을 놓고 실무그룹 논의에서 원칙적인 내용에선 합의에 도달했다고 전했다.
WHO는 "역사적인 일"이라고 평가했다. 8차례나 실무그룹 협상을 벌이는 진통 끝에 개정안이 도출을 앞두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러나 각국이 예민하게 여길 개정안 세부사항은 확정되지 않았다.
더구나 회원국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팬데믹 국제협약 내용을 둘러싼 협상은 여전히 절충점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초안 마련을 위한 정부 간 협상기구(INB)를 꾸리고 작년부터 이달까지 9차례나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접근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법적 구속력을 지닐 팬데믹 협약은 총회를 일주일 남겨둔 상황에서도 각국의 이견 속에 난항을 거듭해온 셈이다.
쟁점은 감염병 발생 시 병원체에 접근할 권리를 어떻게 규정하고 백신·치료제, 진단도구 등을 개발한 데 따른 이익을 어떻게 나눌지 등이 꼽힌다.
보건 역량이 부족한 국가에 재정적 지원을 하는 방안을 두고도 세계 각국은 각기 다른 접근법을 옹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별 소득 수준과 의료 역량 차이에 따라 의견이 크게 달라 타협이 어려운 쟁점들이다.
WHO 안팎에선 이번 세계보건총회에서 팬데믹 국제협약이 각론까지 온전히 갖춘 모습으로는 도출되기 어려울 거라는 관측이 제기된다. 협약의 대체적인 방향성에 공감하는 수준에서 이번 총회를 넘기고, 후속 논의가 계속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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