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기 폭격 당한 이스라엘 '최후의 피란처' 라파, 생사 오간 아비규환 현장
거주민들 "공습 전 대피 명령 받은 바 없다"…'공습 경보 없었다' 증언들
(서울=연합뉴스) 이신영 기자 = "다른 텐트에 있던 아이들이 한밤중에 달려와 불타고 있는 부모님을 구해달라고 소리쳤다. 소화기를 들고 달려갔지만, 그들을 구할 수가 없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라파 서부의 탈 알술탄 난민촌에 사는 아흐메드 알-라흘(30)은 26일(현지시간) 밤 가족들과 잠자리를 준비하고 있을 때 커다란 폭발음을 들었다.
텐트가 흔들릴 만큼 수차례 폭발음이 이어진 뒤 현장은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그는 "불타고 있는 사람들이 울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장면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지만 어찌할 바를 몰랐다"며 "아직도 귓가에 비명이 울리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 뉴욕타임스(NYT) 등은 27일(현지시간) 목격자와 전화 통화 등을 통해 이스라엘 공습으로 '생지옥'으로 변했던 피란민촌의 처참한 상황을 전했다.
이 난민촌은 이스라엘 공세에 가자지구 남쪽 끝까지 떠밀려온 주민 수십만명이 천막을 치고 머물렀던 최후의 피란처로, 26일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습으로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 기준 지금까지 여성과 노약자 23명을 포함해 최소 45명이 숨지고 249명이 다쳤다.
무함마드 알-하일라(35)는 WP와의 전화 통화에서 거리 노점에 물건을 사러 가던 길에 거대한 섬광과 화염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그는 "불꽃이 치솟고 새까맣게 타버린 시신이 흩어져 있었으며 사람들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며 "온몸이 끔찍한 공포로 얼어붙는 것 같았다"고 떠올렸다.
알-하일라는 이번 공습으로 7명의 친척을 잃었다. 희생자 중에는 70대 노인과 어린이 4명도 포함돼있었다.
그는 WP에 "온몸이 새까맣게 타고 얼굴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서 아침까지도 누가 누군지 확인하기도 어려웠다"며 "이 생에서의 삶을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마치 죽음의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것 같다"고 호소했다.
NYT에 따르면 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기구(UNRWA)는 소셜미디어에 현장 사진들이 가자지구가 '생지옥'(hell on earth)임을 보여준다고 올렸다.
NYT가 확인한 현장 영상에서는 사람들이 제정신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잔해에서 불타버린 시신들을 꺼내며 절규하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심각한 피해에도 부상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시설과 의약품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WP는 공습 현장에서 2마일도 안 되는 곳에 있던 국경없는의사회의 임시 응급외상센터에서는 28명이 실려 오자마자 숨을 거뒀고 심각하게 화상을 입거나 다친 180명을 치료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제의료봉사단이 운영하는 또 다른 진료소에서는 한 어린 여자아이가 만나는 사람을 모두 붙잡고 부모님을 찾고 있었다고 현지 의료진인 아흐메드 모칼랄라티가 전했다. 소녀의 부모는 사망자 명단 중에 있었다.
모칼랄라티는 많은 사람이 끔찍하게 다쳐서 왔고 절단 수술도 필요한 상황이지만 의료용 장갑은 물론 상처를 치료할 다른 의약품도 모두 바닥났다고 알렸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번 공습이 '비극적 실수'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은 높아지고 있다.
WP는 탈 알술탄 피란민촌은 이스라엘이 라파에 지정했던 대피 구역 밖에 있으며, 이 지역 거주민들은 공습 전 대피 명령을 받은 바 없다고 보도했다.
이번 공습으로 형과 조카 2명을 잃은 무함마드 아부 샤흐마(45)는 가족들과 함께 칸 유니스 외곽의 알 마와시로 이동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잃어버린 사람들을 위해 슬퍼할 시간도 없다"며 "지금 중요한 것은 남아있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무함마드 아부 가넴(26)은 NYT에 "모든 곳이 폭격당하고 있고 대피 트럭에 지불할 돈도 없다"며 "여기 남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했다.
eshi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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