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파병론도 다시 고개…유럽 각국은 온도차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개전 3년째로 접어들며 러시아의 거센 공세에 우크라이나가 주요 전선에서 밀리자 다급해진 서방이 악화하는 전세를 뒤집기 위해 그동안 금기시해온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수세에 몰린 현 상황을 타개하려면 그동안 제한을 뒀던 '서방 지원 무기로 러시아 본토 타격'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고, 서방 병력의 우크라 파병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서방이 '레드 라인'을 넘을 기미가 보이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서방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개입할 경우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즉각 으름장을 놨다.
최근 서방에서는 우크라이나가 지원받은 서방 무기를 러시아 영토 공격에 쓰지 말아야 한다는 제한을 풀어주자는 주장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서방 정상 가운데 우크라이나 지원 필요성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것으로 평가받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28일(현지시간) 금기를 깨야 한다는 쪽에 힘을 실었다고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이 전했다.
독일을 국빈 방문한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오후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회담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서방이 지원한 무기로 러시아 영토를 공격하는 데 찬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마크롱 대통령은 "도시들을 방어해야 하지만, 미사일이 발사되는 곳을 공격할 권리는 없다는 것을 어떻게 우크라이나에 설명할 수 있겠느냐"며 "이는 '무기를 지원하겠지만 스스로를 방어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다만 우크라이나가 민간 시설이나, 우크라이나 공격과는 무관한 러시아 군사 시설 등을 표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앞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도 지난 24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는 무기 사용에 대한 일부 제한을 해제해야 할지 숙고할 때"라며 전선에서 고전하는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로 러시아를 공격할 수 있게끔 허용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27일에는 불가리아에서 열린 나토 의회연맹 춘계총회에서 러시아에 대한 서방 무기 발사 제한을 해제할 것을 회원국들에 촉구하는 선언문이 채택됐다.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2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 국방장관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서방 지원 무기를 활용한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문제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 행정부 내에서도 최근 우크라이나가 서방의 무기로 러시아 본토를 타격하는 것을 묵인하는 듯한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이달 14일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은 키이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러시아 본토 공격과 관련해 "궁극적으로 우크라이나가 자국을 위해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블링컨 장관의 이날 발언은 러시아와 나토의 직접적인 충돌 가능성을 우려, 그동안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지원하되 러시아 본토 내 목표물을 공격하는 데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조건을 내건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유럽 동맹국들의 요구를 수용해 기존 방침을 변경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을 낳았다.
FT는 이와 관련, 블링컨 장관의 우크라이나 방문 이후 미국 행정부 내에서도 이와 관련한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미 고위 당국자를 인용해 전했다.
서방에서 지원받은 무기들을 러시아 본토 공격에 쓸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지속적으로 촉구해 온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8일에도 "(현재의 상황은) 적이 당신을 쏘고 있는데, (반격을) 허락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응 사격을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로 서방을 거듭 압박했다.
이런 가운데, 한동안 잠잠했던 유럽 파병론까지 다시 고개를 들 기미를 보인다.
지난 2월 마크롱 대통령이 불 지핀 파병론은 나토와 대부분 동맹국이 동조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으나, 폴란드와 발트 3국(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러시아 인접국이 최근 파병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여러 경로로 전하고 있다고 로이터 통신은 보도했다.
라도스와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은 28일 폴란드 일간 가제타 비보르차 등과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파병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 푸틴(러시아 대통령)이 우리의 의도를 추측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트해 연안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도 파병 가능성을 살려두고 있다.
독일 매체 슈피겔에 따르면 발트 연안국 의원들은 최근 우크라이나 전황이 극도로 악화할 경우 러시아군이 국경에 접근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파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최근에는 프랑스군이 우크라이나 장병 훈련을 위해 교관을 파견하기로 했다는 설익은 발표가 나와 유럽 파병론과 관련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양국은 해당 소식이 나온 직후 조율되지 않은 사안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이달 초 5기 임기를 시작한 이후 국방장관을 교체하는 등 군 기강을 다잡고, 2주 새 3개국을 도는 등 안팎으로 광폭 행보를 하며 자신감을 한껏 드러내온 푸틴 대통령은 서방의 이런 움직임에 경고를 날렸다.
푸틴 대통령은 28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순방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유럽, 특히 작은 국가들은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노는지 알아야 한다"며 서방 무기를 이용한 러시아 본토 타격론을 직접 언급했다.
그러면서 "작고 인구 밀도가 높은 나라들은 러시아 영토 깊숙한 곳을 공격하기 전에 이를 명심해야 한다"며 경고했다.
푸틴 대통령은 또한 유럽의 우크라이나 파병론과 관련해서는 파병군들은 러시아의 합법적인 표적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는 서방이 지원한 무기의 러시아 본토 공격 제한을 해제할지와 관련해 여전히 이견이 있는 상황이라고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짚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26일 자국 방송에 출연해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난 우리가 매우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숄츠 총리도 같은 날 러시아 본토 타격과 관련한 독일의 기존 정책을 변경하는 것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우리는 무기 제공에 관해 우크라이나와 합의한 명확한 규칙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숄츠 총리는 28일 마크롱 대통령과의 정상 회담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우크라이나는 공격받고 있고 스스로 방어할 수 있다. 국제법의 틀 안에서 행동해야 한다는 규칙이 잘 지켜지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원론적 의견을 냈다.
파병론과 관련해서도 아직은 EU나 나토 내부적으로 이견이 팽팽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나토는 파병론에는 명확히 선을 긋고 있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28일 EU 국방장관회의에 앞서 취재진에 "우리는 나토 전투 병력을 우크라이나에 보내려는 어떠한 계획도 갖고 있지 않으며 전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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