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긍정 평가 속 과제 지적…"한국형 SMR 반영, 수출의지 담아"
"대형원전 3기 계획, 경제성 논란 예상…12차 논의 과정서 정리 필요"
"경직성 전원 비중 높아져 '블랙아웃' 막는 안정적 전력계통 확보 필요"
(세종·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김동규 기자 = 2024년부터 2038년까지 15년간의 전력수급 밑그림을 그린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 실무안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래 전력 수요에 적절히 대응하고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전력공급 청사진을 담은 것으로 평가했다.
특히 인공지능(AI) 시대의 급증하는 전력 수요를 반영하고 한국형 소형모듈원전(SMR) 인 'i-SMR' 도입을 전제한 점 등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31일 11차 전기본 총괄위원회가 발표한 실무안은 오는 2036년 전력 목표 수요를 129.3GW(기가와트)로 산출했다. 이는 10차 계획이 2036년 목표로 제시한 118.0GW보다 11.3GW 늘어난 것이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창의융합대학장)는 "10차 계획보다 목표 수요가 대폭 상향됐는데, 근거를 보니 AI 혁명으로 인한 반도체 클러스터, 데이터센터 증가 등 엄청난 전력 수요 증가분을 반영한 것"이라며 "변화된 현실에 맞춰 수요 전망을 상향한 것은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실무안에 SMR이 언급된 것도 긍정적으로 봤다.
실무안에는 오는 2038년까지 최대 3기의 신규 원전이 새롭게 건설되고, 2035년부터는 발전설비 중 SMR이 본격 투입되는 방안이 제시됐다.
유 교수는 "실무안에 담긴 SMR은 700MW(메가와트)로 반영됐는데, 이는 한국수력원자력이 개발하는 국산 i-SMR을 기준으로 한 것"이라며 "전기본에 i-SMR을 명시적으로 반영해 국내에 i-SMR을 보급하고 테스트베드를 구축해 실증하는 등 수출까지 나서겠다는 의지가 처음 담겼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실무안에 신규 대형 원전이 홀수인 최대 3개로 설정된 것에는 아쉬움을 표했다.
유 교수는 "한국형 원전은 효율성을 위해 짝수로 지어져야 하는데, 이번에 최대 3개로 제시돼 경제성 문제가 불거질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유 교수는 "다만 11차 계획에서 3기를 반영했다 하더라도 곧 시작될 12차 전기본 논의 과정에서 4기로 늘리거나 2기로 가면서 신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안 등을 고민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래 가파른 전기 수요 증가 대응과 무탄소에너지 보급 확대에 초점을 맞춘 양적인 전력 공급 확충 청사진이 제시됐지만, 심각한 포화 상태를 맞은 전력망 문제 해결은 더욱 시급해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은 인구와 주요 산업 시설이 수도권에 밀집됐지만 원전과 화력발전소 등 대형 발전소는 강원·경상·충청·전라 등 비수도권에 있어 장거리 송전망으로 전기를 수요지로 나르고 있다.
신재생에너지 역시 설치 여건이 좋은 호남과 경남 지역에 집중돼 있어 지역 내에서 소비되지 못하고 송전망을 타고 수도권 등 원거리로 수요를 분산시켜야 하는 구조다.
전기위원장을 지낸 강승진 한국공학대 융합기술에너지대학원 명예교수는 "안 그래도 송전망 제약 때문에 재생에너지 발전 허가가 보류되고 있고, 동해안 석탄 발전소 가동도 제약받고 있다"며 "우선 걱정되는 것이 송전망 문제로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경직성 전원으로 출력 조절이 쉽지 않은 원전과 전기 생산이 들쭉날쭉한 신재생에너지의 비중이 높아지는 만큼 안정적인 전력계통 운영 방안 확보도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기 공급은 실시간으로 완벽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해도, 수요보다 공급이 많아도 '블랙 아웃'이라고 불리는 대규모 정전 사태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수요에 따라 발전 출력 조절이 쉬운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 등 화력발전의 비중이 높은데 향후 무탄소 전원을 확대하다 보면 이 같은 유연성이 점차 줄어들게 되기 때문에 남는 전기를 저장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 확충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강 교수는 "경직성 전원인 원전과 신재생에너지 확대 속에서 변동성이 커짐에 따라 전력 수급을 어떻게 맞출 것인가가 향후 중요한 과제"라며 "ESS 확충도 경제성의 어려움이 있어 전력 시장과 계통 운영 개선 방안도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 역시 "출력 조절과 관련한 유연성 확보 방안이 추가로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탄소중립 전환과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대응을 위해 재생에너지 사용을 대폭 늘려가는 것은 시대적 조류이지만, 양적 보급 확대만큼이나 재생에너지의 발전 단가를 낮추는 노력도 중요해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현재 수준에서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단가는 원전의 3배에 달한다. 이 같은 가격 구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중이 늘어나면 그만큼 국민과 기업의 전기요금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강 교수는 "우리나라는 땅이 좁아 토지 확보 등 간접적 비용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 재생에너지 가격이 높아 세계 주요국과 달리 재생에너지 가격이 비싸서 문제가 된다"며 "정부가 공유지만큼은 계획 입지로 개발해 공급해 원가를 낮춰 조속히 그리드 패리티(재생에너지 비용이 일반 전기 비용과 같아지는 시점) 달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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