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사도광산' 세계유산 기대하는 日…'군함도' 약속은?

입력 2024-06-01 07:07  

[특파원 시선] '사도광산' 세계유산 기대하는 日…'군함도' 약속은?
'엄혹한 환경서 일한 징용 조선인' 알리겠다 했지만…정보센터서는 "차별 없었다"
'한국이 거짓 선전' 소책자도…韓, 사도광산 심사서 "전체역사 반영" 요구해야



(도쿄=연합뉴스) 박상현 특파원 = 지난달 28일 기자는 도쿄 신주쿠구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찾았다. 평일이고 예약자만 입장이 가능해서인지 내부에는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총무성 청사 뒤쪽에 있는 산업유산정보센터는 말 그대로 일본 산업유산 관련 정보를 알리는 시설이다. 다만 이곳이 다루는 산업유산은 일본이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한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이하 '산업혁명유산')이다.
산업혁명유산은 일본 각지에 산재한 23개 시설로 구성된다. 그중 하나가 조선인 강제노역 현장이자 한국에는 '군함도'로 널리 알려진 규슈 나가사키현 하시마(端島) 탄광이다.
산업유산정보센터에 들어가면 첫 공간에 산업혁명유산이 세계유산에 등재되기까지 발자취가 연표 형태로 상세히 정리돼 있다.
한쪽 벽면에는 2015년 등재 당시 일본 정부 대표단이 한 발언이 게시됐다.
"1940년대 몇 곳에서 의사에 반해 끌려와 엄혹한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된 많은 한반도 출신자 등이 있었다는 것,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일본 정부가 징용 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를 강구할 생각이다. 일본은 정보센터 설치 등 희생자를 기억하기 위해 적절한 조치를 해석전략에 담을 생각이다."
과연 이 약속은 9년이 흐른 지금 제대로 지켜지고 있을까. 정보센터를 돌아보고 내린 결론은 센터가 설치됐다는 사실 외에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일본이 개항하기 전부터 1868년 메이지 유신을 거쳐 20세기 초반까지 어떻게 산업화를 이뤄냈는지 설명한다. 이어 산업혁명유산을 조선, 제철·제강, 석탄 등 세 가지 산업별로 분류해 소개한다.
다 읽기도 벅찬 설명문에서는 조선인이 동원돼 가혹한 환경에서 노동했다는 내용을 찾기 힘들다. 한국인이 주목하게 되는 하시마 탄광 설명문에도, 일본어 음성 가이드에도 해당 내용은 전혀 없다.
하시마 탄광에 관한 글은 호평 일색이다. 설명문은 이 탄광이 세계 유수의 해양 탄광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해저에서의 채굴 경험과 기술은 근대 탄광의 기초를 구축해 전국 탄광, 나아가 아시아에 전파됐다"고 평가한다.
일본이 산업유산정보센터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전시 마지막 공간에서 알 수 있었다.
음성 가이드에 귀를 대니 "막부(幕府) 말기 사무라이에서 시작해 많은 일본인이 시행착오를 거듭해 첨단기술을 습득하고 독자적인 생각을 짜내 강한 결의로 우리나라(일본)의 근대 산업화를 단기간에 완수했다"는 자부심 가득한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 산업유산에 '그늘'은 없고 '빛'만 있다고 느끼게 했다.
전시 공간에서 외면받았던 조선인 노동에 관한 정보는 바로 옆에 마련된 자료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은 예상과 정반대다. 핵심은 조선인이 차별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실의 역사를 추구하는 하시마 도민회' 마쓰모토 사카에 명예회장 발언을 정리한 패널을 읽다 "조선인이니까, 일본인이니까 하는 그런 차별은 없었다"는 대목에서 한동안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는 "(채굴 작업이) 매우 위험한 작업이어서 연대감이 매우 강했다"며 조선인과 일본인이 사이좋게 지냈다고도 했다. 일본이 조선을 착취하기 위해 조선과 한 몸이었다는 뜻으로 만든 '내선일체'라는 말이 떠올랐다.
자료실에서는 징용돼 일본으로 온 조선인과 대만인 근로자가 받았던 월급봉투,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지난해 5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저 자신은 당시 혹독한 환경에서 많은 분이 매우 고통스럽고 슬픈 일을 겪으셨다는 것에 마음이 아픕니다"라고 했던 말이 인쇄된 작은 액자도 볼 수 있었다.
정보센터를 나오면서 자료실 직원이 건네준 일본어 소책자 2종을 살펴봤다.
표지에는 "누가 역사를 날조하고 있는 것인가. 군함도는 지옥도가 아니었다"는 글만 있었다.
내지에는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군함도에서 촬영되지 않은 비참한 모습의 사진을 근거로 거짓 선전을 하고 있고, 한국 언론이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보도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 담겼다.
일본은 9년 전 '의사에 반해 끌려와 엄혹한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된 조선인'을 기리며 정보센터를 세우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는 한국을 공격하고 일본의 침략 역사를 정당화하는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를 방문한 이유는 일본이 또 다른 조선인 강제노역 장소인 니가타현 '사도 광산'을 올해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도 광산은 7월 하순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산업혁명유산 등재 당시 한국 측 비판을 받은 일본은 사도 광산을 세계유산으로 신청하면서 유산 대상 기간을 16∼19세기 중반으로 한정해 근대를 제외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사도 광산의 전체 역사가 반영돼야 한다고 거듭 요구했지만, 일본은 "한국과 성실하고 정중하게 논의를 지속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되풀이했다.
일본이 최종 심사 무대인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사도 광산이 지닌 유산 가치를 호소한다면 위원국인 한국은 사도 광산의 전체 역사를 전할 생각이 있는지, 산업혁명유산을 등재하면서 했던 약속을 제대로 지킬 것인지 재차 물어야 하지 않을까.
psh59@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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