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C '만델라 후계자' 집권 30년간 부패·실정에 민생고 가중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청년세대 중심 불만 확산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유현민 특파원 = 지난달 29일(현지시간) 남아프리카공화국 총선 투표장은 '넬슨 만델라(1918∼2013)의 시대'가 서서히 저물어 가는 변화의 현장이었다.
'만델라당'으로 불리는 집권당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차별 정책)가 종식된 1994년 이후 30년간 이어온 단독 집권에 처음으로 실패했다.
ANC가 지난 6번의 총선에서 60% 안팎의 높은 득표율로 집권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만델라'였음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ANC는 흑인에게 참정권이 처음 부여된 1994년 총선에서 62.7%를 득표해 집권에 성공했고 당시 ANC 의장이던 만델라는 그해 5월 10일 첫 흑인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대통령이 된 그는 임기 5년간 아파르트헤이트의 막을 걷어내고 화해와 포용의 정치를 펼쳤다.
인종 화합에 따른 정치·사회적 안정과 식민지 시대부터 갖춰진 경제·산업 기반, 풍부한 자원을 발판삼아 남아공은 2000년대 초반까지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만델라의 뒤를 이은 ANC 후계자들의 부패와 실정으로 경제난과 사회 불안이 가중되며 ANC의 지지율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만델라의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1999년 66.4%로 오른 ANC의 총선 득표율은 2004년 69.7%로 정점을 찍은 뒤 상승세가 꺾이며 2009년에는 65.9%를 기록했다.
2014년 총선에서는 62.2%를 득표했고 직전 2019년 총선에서는 57.5%의 득표율로 처음으로 60% 아래로 내려갔다.
지지율은 하락세를 이어갔으나 과반 득표를 유지한 것은 그나마 만델라의 후광과 향수가 조금 더 남아 있던 덕분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민심은 ANC를 외면했고 '만델라 레거시'는 점점 색이 바랬다.
기성세대는 물론 아파르트헤이트 종식 전후로 태어난 20∼30대 중심으로 ANC에 대한 불만이 확산하면서다.
2000년대 초반까지 경제 성장이나 역사적인 아파르트헤이트 종식의 변화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청년 세대 대부분은 삶의 질이 예전보다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특히 32.9%의 실업률을 기록한 올해 1분기 15∼34세 청년 실업률은 45.5%에 달해 남아공 청년 세대가 겪는 고통과 좌절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지난 29일 하우텡주의 한 투표소에서 만난 타쿠 템베자(22)는 "여당의 오랜 집권 기간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더 나빠지는 것을 봤다"며 "이번 총선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은 변화"라고 말했다.
남아공 선거관리위원회(IEC)에 따르면 이번 총선에 등록한 아파르트헤이트 이후 세대인 18∼29세 유권자는 494만여명으로 전체 2천767만여명의 18% 가까이 달한다.
기성세대라고 ANC에 대한 불신과 불만은 없는 것은 아니다.
같은 투표소에서 만난 건설업 종사자인 제프 무어(52)는 "지난 30년간 상황이 나빠지기만 했다"면서 만연한 부정부패를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어 "결국 ANC를 중심으로 연정이 구성되지 않겠느냐"면서 "그렇게 되면 ANC의 부정부패가 다른 정당으로도 퍼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해 들어 여론조사에서 ANC의 지지율이 줄곧 40%대에 그친 것은 이런 민심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높은 실업률과 만연한 범죄, 부패, 빈부 격차, 물과 전력 부족 등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ANC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결국 실제 총선에서도 ANC는 절반에 한참 못 미치는 40%대 초반의 득표율로 집권 연장을 위해 사상 처음 다른 정당과 연정을 구성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hyunmin623@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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