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보증금 사고 대위변제금 회수 위해 '셀프낙찰'…경매시장 '큰 손' 떠올라
'든든전세'로 내년까지 무주택자에 1만가구 공급…정부, 이달 중순 모집공고
HUG 채권 회수율 높이고, 전세 공급 확대 '일석이조'…빌라 낙찰가율도 상승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빌라 경매시장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를 대위변제한 후 경매로 넘긴 주택을 무주택자에게 공공 전세로 공급하는 '든든전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보증 사고 주택을 무더기로 '셀프낙찰' 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이달 중순께 든든전세 공고를 내고 본격적인 임차인 모집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든든전세가 HUG에는 대위변제 회수율을 높이고 무주택 서민에게는 싸고 안전한 전셋집을 제공하는 대안이 될 지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HUG, 지난달 보증사고 빌라 등 302건 셀프낙찰…경매 비용은 최소화
4일 국토교통부와 HUG에 따르면 HUG는 지난달 법원 경매를 통해 빌라로 통칭되는 다세대·연립과 주거용 오피스텔 등 302건을 무더기로 낙찰받았다.
전세사기와 역전세난 여파로 집주인 대신 전세보증금을 임차인에게 돌려준 뒤 채권 회수를 위해 HUG가 강제경매를 신청한 주택을 낙찰받은 것이다. 이른바 셀프 낙찰이다.
종전까지 HUG는 보증 사고 주택의 강제 경매를 신청해도 직접 입찰에 참여하진 않고, 낙찰대금에 대해 우선변제금만 받았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달리 HUG는 공공임대사업자 지위가 없다 보니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 등으로 활용할 방법이 없었다.
그 사이 전세사기 등의 여파로 HUG의 전세 보증 사고액은 눈덩이처럼 불었고, 채권 회수율은 점점 떨어졌다.
빌라 등 경매 물건은 쏟아지는데 매매·전셋값은 떨어지고 빌라 기피현상은 심화되면서 낙찰받으려는 투자자가 없었다.
특히 대항력 있는 임차인의 우선변제권을 승계한 HUG가 버티고 있다 보니 유찰이 계속돼 경매 최저가가 떨어져도 낙찰자는 HUG의 선순위 전세보증금 전액을 인수해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이 때문에 HUG의 전세보증 대위변제액 연간 회수율(당해연도 회수금/대위변제 금액)은 2019년 58%에서 지난해 말에는 14.3%로 떨어졌고, 올해 1분기에도 17.2%에 그치며 HUG의 재무구조 악화로 이어졌다.
작년 말 기준 HUG가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로 회수하지 못한 채권 잔액은 4조2천억원이 넘는다.
HUG가 보증 사고 주택의 셀프 낙찰이 가능해진 것은 정부가 지난 3월 대통령 주재 민생토론회에서 밝힌 든든전세 사업을 위해 4월 초 매입임대주택 업무처리지침을 개정해 HUG를 공공주택 사업자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든든전세는 HUG가 보증 사고 주택을 직접 낙찰해 소유권을 넘겨받은 뒤 새 임차인에게 전세를 놓음으로써 보증금만큼 HUG의 현금흐름이 즉시 개선되는 효과가 있다.
또 무주택 서민들은 전세사기 걱정 없이 시세보다 싼 전세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서민주거안정을 도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HUG가 경매 낙찰에 투입하는 비용은 취득세 등 제반비용 정도다. HUG가 내야 할 경매 낙찰대금과 HUG가 우선변제권을 갖고 있는 전세 보증금을 상계 처리할 수 있어서다.
HUG는 현재 대위변제를 해준 전세보증금보다 낙찰가를 낮게 책정하는 전략으로 추가 자금 투입 없이 든든전세 주택을 확보하고 있다.
정부와 HUG는 계약갱신청구권을 감안해 4년 이상 전세를 놓은 뒤 해당 주택을 매각해 최종 채권 회수를 마무리할 방침이다.
주택경기가 좋을 때 매각하면 대위변제 금액보다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어 100% 채권 회수와 함께 시세 차익도 가능하지만 반대로 집값 하락기에 매도하면 손실이 커질 수도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HUG가 집값 등 시장 상황을 고려해 채권 회수율을 높일 수 있는 적정 시점을 골라 보유 주택을 매도할 것으로 본다"며 "HUG의 부실을 막기 위해 주택을 싸게 팔 수도 없지만, 공공주택의 성격이어서 과도하게 높은 금액에 매도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UG가 낙찰받는 주택은 주로 무주택 청년·신혼부부 등이 선호하는 서울 등 수도권의 신축 물건에 한정된다.
노후 주택은 수선·유지비가 많이 들고 임차인의 선호도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근 빌라 임차인들은 전세사기 여파로 월세를 선호하지만 든든전세는 HUG가 집주인으로 보증금을 떼일 일이 없기 때문에 전세로 놓더라도 인기가 많을 것"이라며 "전세보증금을 받아 HUG의 자금부담을 덜어주고, 빌라 기피 현상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HUG 낙찰 주택 이달 중 든든전세로 공급…빌라 낙찰가율은 고공행진
국토부는 이달 중순께 든든전세 공고를 내고 본격적인 임차인 모집에 나설 방침이다.
정부는 HUG가 지난달에 낙찰한 302가구를 포함해 올해 3천500가구, 내년 6천500가구 등 HUG 몫으로만 총 1만가구의 든든전세를 시장에 내놓을 방침이다.
HUG는 현재 경매 낙찰을 위해 대항력을 포기하고 있다. 매각대금에 대한 우선변제권은 행사하되, 보증금 전액을 변제받지 못하더라도 임대차보증금반환청구권을 포기하고 주택임차권 등기를 말소하는 것에 동의한다는 의미다.
경매업계에 따르면 이런 내용으로 HUG가 임차권 인수조건 변경을 신청한 주택이 5월 말 기준으로 총 1천528가구에 달한다.
전세사기로 인한 보증 사고 여파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최소 내년까지는 HUG의 무더기 빌라 낙찰이 계속될 것이라는 얘기다.
HUG가 셀프 낙찰에 참여하면서 낙찰률(경매 진행건수 대비 낙찰건수)과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도 덩달아 치솟고 있다.
HUG는 대위변제를 해준 전세보증금 이하로만 낙찰받으면 보증금과 상계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2∼3회차 입찰에서 제3자가 낙찰받기 힘든 높은 가격대를 써내고 있다.
법원경매정보회사 지지옥션 집계 결과 지난달 서울 빌라 낙찰률은 27.8%로 전세사기 문제가 본격화하기 전인 2022년 4월(31.3%) 이후 2년 2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경기와 인천의 지난달 빌라 낙찰가율은 각각 75.6%, 72.3%로 2022년 9월(79.7%), 2023년 9월(76.3%) 이후 최고였다.
지난달 16일에 HUG가 단독 응찰해 낙찰받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의 P다세대 주택 4건의 낙찰금액은 감정가의 83∼84%에 달했다.
또 지난달 31일 입찰한 인천 남동구 만수동의 M오피스텔은 2회 유찰돼 최저가(1억2천54만원)가 감정가(2억4천600만원)의 49%까지 떨어졌는데, 총 5명이 경쟁한 끝에 HUG가 감정가의 70%인 1억7천200만원에 낙찰받았다.
2위 응찰자가 써낸 1억4천700만원(감정가의 59.8%)보다 2천500만원 이상 높은 금액이다.
HUG는 최저가보다 5천만원 이상 높은 금액을 썼지만, 대위변제를 해준 전세금(2억900만원)보다는 낮아 추가 자금투입 없이 상계처리가 가능하다.
지지옥션 이주현 전문위원은 "HUG의 경매 참여 이후 최근 60∼70%대에 그쳤던 수도권 빌라 낙찰가율이 70∼80%대로 높아지고 낙찰률도 오르는 추세"라며 "당분간 이런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빌라 경매에서 착시 현상을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법무법인 명도 강은현 경매연구소장은 "HUG 변수로 인해 평균 낙찰가율이 오른다고 해서 분위기에 휩쓸려 높은 가격을 써내면 위험하다"며 "주변 매매, 전세 시세 등을 고려해 낙찰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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