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내·아랍권 시선 '싸늘'…네타냐후 군사작전 격화할 수도
휴전협상 유엔결의 이행도 불투명…"네타냐후 美대선까지 버티기"
(서울=연합뉴스) 장재은 기자 = 가자지구 전쟁의 종식과 안정적인 재선 도전을 원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대형 돌발악재를 만났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일방행보에 고삐가 풀린 데다가 가자지구를 둘러싼 정치적, 외교적 딜레마가 악화하는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외신을 종합하면 이스라엘군의 최근 인질 구출, 베니 간츠 국민통합당 대표의 이스라엘 전시내각 이탈은 바이든 행정부에 뚜렷한 타격이다.
이스라엘군은 지난 8일 가자지구에서 인질 4명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주민의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실패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는 이스라엘군의 작전에서 최소 274명이 죽고 598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이스라엘군은 사상자가 100명 미만이며 그 가운데 민간인이 얼마나 포함됐는지는 모르겠다는 태도다.
하마스가 작년 10월 기습 때 끌고 간 국민을 구하는 게 이스라엘의 국가적 의무이기는 하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간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에서 무차별적 공격을 펴면서 보여준 전쟁범죄급 민간인 생명 경시가 이번 작전에도 되풀이됐다는 것이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기습에 1천200명 정도가 죽자 보복 전쟁에 나서 지금까지 가자지구 내에서 3만7천명이 넘게 죽였다.
인질구출 작전의 성격을 둘러싼 논란 속에 바이든 대통령을 향한 국내외 시선은 더 싸늘해졌다.
올해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이 소속된 민주당을 비롯한 지지층에서 인권 보호에 실패했다는 불만이 다시 터져 나왔다.
지지층 이탈이 소수에 그친다고 하더라도 이는 미국 대선이 치러지는 방식을 보면 결과적으로 치명적일 수 있다.
미국 대선은 대략 6∼7개 경합주의 승패로 전체 승부가 좌우되는데 이들 주는 적게는 수천표 차이로 승자가 결정될 수 있다.
아랍계 인구가 상대적으로 많은 미시간 같은 경합주는 바이든 대통령에게 더 민감한 곳이다.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 8일 미시간주 유세에서 인질 구출을 환영하다가 항의에 직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질구출 유혈사태 때문에 국내 정치적 위험이 커졌을 뿐만 아니라 아랍권과 외교적 관계도 냉랭해졌다.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가자지구와 국경을 맞댄 채 휴전 협상을 중재해온 이집트는 이번 사태를 또 다른 학살로 규탄했다.
하마스에 휴전과 인질 석방을 압박하며 협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해온 다른 아랍국의 분위기도 냉랭하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이 12일부터 요르단, 이집트, 카타르를 차례로 방문하지만 하마스 압박은 이미 더 큰 난제가 된 것으로 관측된다.
인질구출 유혈사태와 더불어 지난 9일 간츠 대표의 전시내각 사퇴도 바이든 행정부를 계속 때리는 악재로 지목된다.
간츠 국민통합당 대표는 네타냐후 총리, 요아브 갈란트(이상 우파 리쿠드당) 이스라엘 국방부 장관과 함께 3인 전시내각을 구성하고 있었다.
중도우파로 상대적 온건파인 간츠 대표는 극단적 국수주의 정파를 정치적 생존 기반으로 삼는 네타냐후 총리를 그간 전시내각에서 견제해왔다.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연립정권 내 극우, 초정통 유대주의 정파는 가자지구 재점령, 레바논과 전쟁을 공개 촉구할 정도로 과격하다.
간츠 대표의 전시내각 이탈에는 향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이 격화하고 전쟁이 중동 다른 국가로 확대될 위험까지 내포돼 있는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으로서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휴전 협상을 끌어낼 가능성이 더 축소된 셈이다.
미국이 초안을 작성한 가자지구 휴전안은 이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가결됐다.
결의 골자는 하마스에 3단계 휴전안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 이스라엘, 하마스 양측이 협상을 서둘러 조건 없이 이행하라는 내용이다.
애초 이스라엘이 결의안을 제시하긴 했으나 전시내각의 성격 변화 때문에 당장 1단계부터 시행될 수 있을지 불투명한 면이 있다.
결의 1단계에는 6주간 완전한 휴전,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내 인구 밀집지 철수, 인질과 팔레스타인 수감자 일부 교환이 포함돼 있다.
연정 내 극우 인사인 베잘렐 스모트리히 재무장관은 인질, 수감자 교환을 '살인자 수백명 석방'으로 규정하며 벌써 협상 반대를 공표했다.
네타냐후 총리에게는 개인적 부정부패 혐의, 하마스 기습을 막지 못한 안보실패 책임 때문에 정치생명 위기가 지속되고 있다.
실각과 처벌을 면할 유일한 길이 극우세력, 유대교 초정통파와 제휴인 만큼 네타냐후 총리는 군사작전 완화를 입 밖에 내기도 어려운 처지다.
바이든 대통령은 네타냐후 총리의 장기전 전략이 지속될 가능성이 확대된 상황에서 속이 탈 수밖에 없다.
백악관도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바이든 행정부의 원론적 입장만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CNN 인터뷰에서 "인질을 모두 구하고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보호할 최선책은 종전"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대선 때까지 계속 네타냐후 총리라는 악재와 맞서 싸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본다.
중동 평화협상 전문가인 애런 데이비드 밀러는 CNN 인터뷰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 대선 때까지) 시간을 벌다가 차기 미국 대통령을 봐가면서 어떻게 자신을 이롭게 할지 결정하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밀러는 "네타냐후 총리가 미국 대선에 투표할 수는 없지만 조 바이든을 찍지는 않을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에 유리한 결단을 하지는 않을 것으로 의심했다.
jangj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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