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이 던진 '1주택자 종부세 폐지론'…대통령실은 "전면 폐지 추진"
집값 못잡고 전월세 물량 감소·똘똘한 한 채 선호로 '시장 왜곡' 비판
증여로 부의 대물림도…전문가 "재산세와 통합하고 가액 기준으로 바꿔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정치권에서 시작된 종합부동산세(종부세) 개편 논의가 부동산 시장의 변수로 떠올랐다.
종부세가 폐지될지, 1주택자에 대해서만 일부 완화될지 국회 논의 과정을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 보유세 부담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만으로도 시장의 구매 심리를 자극하는 분위기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종부세의 운명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세계 유일' 종부세…2019년 공시가 인상으로 '세금폭탄'
지난 2005년 종부세 도입 이전부터 이른바 '호화주택'으로 불리는 고급주택에는 취득세 중과 제도가 있었다.
단독주택은 대지면적 662㎡, 연면적(주차장 제외) 331㎡를 초과하거나 엘리베이터, 수영장 등이 설치돼 있는 경우, 공동주택은 연면적이 245㎡(복층형은 274㎡)를 초과하는 경우 등을 고급주택으로 분류돼 취득세율을 기본세율에서 8%포인트 가산했다. 그러나 취득세 외에 재산세가 중과되지는 않았다.
종부세는 일정 금액 이상의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에게 기본 재산세 외에 추가로 걷는 일종의 부유세(부자세) 개념으로, 전 세계에서 한국에만 유일하게 있는 세금이다.
종부세는 2005년 도입 당시 과도한 징벌적 과세와 재산세와의 이중 과세 등으로 논란이 많았다.
'종이 호랑이' 수준이던 종부세가 진정한 '세금 폭탄'의 위력을 발휘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다주택자의 종부세에 대해 중과세율을 적용하고, 고가주택의 공시가격을 대폭 올리면서부터다.
공시가격이 통상 시세의 50∼60%로 낮다 보니 실효세율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고가주택 보유자들의 보유세 부담을 낮춰준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현실화율 로드맵을 도입해 시세의 90%까지 공시가격을 끌어올리려고 했다.
2019년부터 본격화한 공시가격 인상은 서울 아파트 절반 이상이 종부세 대상에 포함되는 결과를 낳았고, 2주택 이상 보유자는 중과세율로 인해 연간 보유세 부담이 최고 수천만원에 달하는 감당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렀다.
특히 근로소득이 없는 은퇴자들의 반발이 컸다.
1주택자는 "수십년 전에 사서 평생을 살아온 집인데 집값이 올라 종부세를 내야 한다니 내가 투기꾼이냐", 다주택자는 "노후 대비용으로 임대사업을 하려고 산 집인데 돌아오는 것은 수천만원의 종부세 폭탄"이라며 정부를 비판했다.
문재인 정부는 종부세와 양도소득세 중과를 피할 수 있는 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놓고 '부동산 투기에 꽃길을 깔아줬다'는 지적이 나오자 아파트에 대한 임대사업자 제도를 없앴다.
종부세 개편을 공약으로 내건 윤석열 정부는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으로 동결하고, 종부세 부과 기준금액을 12억원(부부합산 18억원)으로 높이는 등의 '투트랙' 전략으로 종부세 부담을 크게 낮췄다.
여기에 지난 16일에는 대통령실이 나서 '사실상' 종부세 폐지를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부동산 시장의 움직임은 이보다 빨랐다.
지난달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와 고민정 최고위원이 연달아 '실거주용 1주택 종부세 폐지'라는 화두를 던진 이후부터 매매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종부세를 만든 민주당이 먼저 개편의 불씨를 지핀 만큼 이번에는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 등 땜질식 처방이 아닌 종부세법 자체 개정도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 것이다.
민주당은 전통적인 지지층 반발과 당 정체성 등을 고려해 공식적으로는 '당론이 아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그러나 3년 뒤 대선을 앞두고 한강벨트 사수와 수도권 민심 확보를 위해 결국 일정 수준 세 부담 완화에 동의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 "세수 재분배" vs "시장 왜곡 부작용"…대통령실 "종부세 폐지"
종부세는 20년간 세수의 지방 재분배에 기여했지만, 부동산 시장 측면에서만 보면 당초 목적인 집값을 잡는 데 실패하면서 시장 기능을 왜곡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급격한 종부세 증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와 함께 '똘똘한 한 채'에 대한 선호도를 높여 서울·지방 간, 나아가 서울 내에서도 강남·강북 간 양극화를 초래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종부세 중과로 강북과 수도권·지방의 집 2채를 팔아 강남 등 상급지의 1채를 구입하려는 수요가 늘어난 것이다.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여 있는 서울 송파구 잠실 일대 아파트가 최근 가격과 거래량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입지 여건이 좋은 '똘똘한 한 채'를 찾아 강북이나 인근 강동구 등지에서 넘어오는 실수요자가 많기 때문이다.
송파구 잠실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강남·서초로 바로 입성하기 부담스러운 30∼40대들이 학군이 좋은 잠실을 강남 본토 입성의 징검다리로 여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종부세 완화 방침이 나온 뒤 준상급지로 분류되는 마포·용산·성동구 등 '마용성' 지역의 거래량이 증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종부세 중과로 다주택자들이 집을 팔 것이라는 정부 예상은 양도소득세 중과로 출구가 막히면서 보기 좋게 빗나갔다.
대신 사전 증여를 통해 자녀 등에게 부를 대물림 하는 수요는 급증했다.
2018년 9·13 대책에서 종부세 중과세율이 도입되고, 이듬해부터 공시가격이 급등하면서 보유세 부담에 집을 팔고 싶어도 막대한 양도세 때문에 못팔고 증여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증여 비중은 관련 통계가 공개된 2006년부터 2017년까지 평균 4.2%에 그쳤으나, 2018년 종부세 중과 이후부터 중과세가 다소 완화된 2022년까지는 평균 12%로 세 배 가까이 급증했다.
일각에서는 보유세 강화와 임대사업자 제도 폐지로 다주택자들이 집을 사기 어렵게 되면서 무주택 또는 갈아타기 실수요자 위주로 시장이 재편되는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본다.
그러나 이로 인해 임대료에 세 부담을 전가하고, 전월세 물량을 감소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주택가액이 아닌 주택 수로 중과 여부가 구분돼 저가 주택 2∼3가구와 초고가주택 1가구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끊임없이 제기됐다.
종부세가 과도하게 높아지자 납세자의 담세력을 고려해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응능과세'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에 대통령실이 밝힌 보유세 개편안은 종부세를 전면 폐지하고 재산세로 통합하자는 것이다.
다만 종부세를 당장 폐지하면 세수에 문제가 생기는 만큼 초고가 1주택 보유자와 보유주택 공시가격의 합산 총액이 높은 다주택자만 종부세를 내게 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은혜 의원은 지난 19일 종부세 전면 폐지 법안을 발의했다.
지방재원 확보를 위해 초고가 주택에 재산세 과세 구간을 신설하고, 이를 통해 종부세 폐지에 따른 지방 세수를 충당하는 내용의 지방세법 개정도 추진한다.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달 정부가 발표하는 세제개편안에서 공개될 전망이다.
◇ 전문가들 "종부세 없애고 재산세와 통합…가액 기준으로 바꿔야"
종부세가 향후 국회 논의를 거치면서 어떤 형태로 바뀔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시작과 달리 용두사미가 될 수도 있다. '부자감세' 논란은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도 부담이기 때문이다.
지난달 헌법재판소가 문재인 정부에서 납부 대상이 확대된 종부세에 대해 합헌 판단을 내리면서 명분도 다소 흔들리는 모양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부동산 시장 정상화를 위해 종부세를 전격 폐지하거나 최소한 세 부담을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용만 한성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종부세는 고가주택 보유자가 소득도 많을 것으로 간주하고 부과하는 부유세인데, 여러 자산 가운데 특히 주택에 대해 과도한 종부세를 부과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며 "종부세를 재산세와 통합하는 대신 줄어드는 지방 세수를 고려해 초고가 주택의 재산세를 지방으로 교부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그간 종부세가 만들어낸 부작용들이 컸기 때문에 종부세는 없애는 것이 맞다"며 "보유세를 재산세로 단일화하되, 필요하다면 합리적인 수준에서 고가주택의 재산세를 누진하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똘똘한 한 채'로 쏠리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는 1주택자뿐만 아니라 다주택자의 종부세 중과도 함께 폐지 또는 완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주택자에 대해 종부세를 중과하면 서울 강남권 등 요지의 1채를 사려는 수요가 증가해 인기지역의 주택가격은 상승하고, 비인기지역과 지방은 외면받아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창무 교수는 "다주택자 종부세로 인한 시장 왜곡의 극단적 사례가 빌라 전세사기"라며 "과도한 종부세로 인해 다주택자의 투자가 막히다 보니 민간의 임대주택은 감소하고, 빌라의 경우 매매가보다 전셋값이 더 높아지면서 전세사기가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간 임대주택의 60% 이상이 법인이 아닌 개인 다주택자들이 내놓는 전월세 주택인 만큼 다주택자 중과세를 걷어내야 전월세 물량 공급이 늘고 전셋값도 안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종부세 전면 폐지가 어렵다면 실거주 목적인 1주택자에 대해 종부세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주택 수가 아닌 주택가액으로 종부세를 전환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김진유 경기대 스마트시티공학부 교수는 "공유주택이나 노후 대비용으로 임대를 하는 1∼2채도 종부세 부담이 크다 보니 소형 임대주택 공급에 지장을 주고 있다"며 "주택 수가 아니라 합산 가액으로 종부세 대상을 선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조세를 부동산 시장을 컨트롤하는 수단으로 쓰면 안된다고 강조한다.
참여정부의 종부세 설계자이자 문재인 정부에서 부동산 정책을 담당했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자신의 저서 '부동산과 정치'에서 "집값을 잡기 위해 종부세 최고세율 상향, 공시가격 현실화율 로드맵으로 부동산 세금을 대폭 올렸다가 세 부담이 과도하게 되자 다시 기준을 낮추면서 부동산 세제가 신뢰를 잃고, 버티면 된다는 믿음을 주고 말았다"며 "세금이 중요한 부동산 정책 수단인 것은 분명하지만 만능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고백했다.
김수현 전 정책실장은 "집값에 직접적이고 즉각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것은 금리와 유동성이었다"고 분석했다.
이용만 한성대 교수는 "공평 조세는 응능부담(應能負擔)과 응익부담(應益負擔)이라는 조세원칙에 따라 부과하는 것이며, 부동산 시장의 컨트롤 수단으로 좌지우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시장 조절 수단은 조세가 아닌 다른 수단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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