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아동과 무력 분쟁' 공개토의 연설…5년만에 안보리 회의장 참석
국제원로·대사들과 '반기문홀'서 오찬 회의도…"안보리 교착" 쓴소리
(뉴욕·멕시코시티=연합뉴스) 이지헌 이재림 특파원 =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급증세를 보인 무력 분쟁 지역에서의 아동을 향한 인권침해에 대해 성토하며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했다.
반 전 총장은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아동과 무력 분쟁'(Children and Armed Conflict·CAAC)을 의제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연례 공개토의에서 "지난해 아동에 대한 중대한 인권 침해가 21% 증가했고, 같은 기간 아동 살해 등이 35% 늘었다는 사실에 충격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무력 분쟁 과정에서 어린이는 가장 무고한 희생자"라고 성토했다.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제안으로 창설된 국제사회 원로 그룹(디 엘더스·The elders) 부의장 자격으로 이날 토의에서 연설한 반 전 총장은 지난해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어린이 4천247명과 이스라엘 어린이 113명에 대한 인권 침해 등 중대한 위반 행위를 유엔에서 확인했다며, "이는 분쟁의 충격적인 규모를 방증한다"고 역설했다.
반 전 총장은 "한국전쟁 당시 어린 소년이었던 저는 죽음과 파괴 속에서 피난하며 트라우마를 경험했다"며 "부모님과 함께 불타는 마을을 떠나면서 목격한 인간적 고통은 지금까지도 계속 저를 괴롭히고 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무고한 어린이들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는 분쟁에서 계속해서 끔찍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는 것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며 "오늘날의 상황은 지난 30여년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노력이 총체적으로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참담한 결과"라고 역설했다.
아동과 무력 분쟁 사무총장 연례 보고서에서 이스라엘 군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명단에 포함한 것은 책임자 확인이라는 측면에서 중요한 단계라고 강조한 반 전 총장은 "전 세계 어디에서든 아동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자에 대한 면책은 없어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종이호랑이'라고 비판받는 안보리에 대해서도 쓴소리했다.
반기문 전 총장은 "평화 및 안전 수호라는 측면에서 안보리를 중심으로 두는 시스템은 낡고 비효율적이어서, 무고한 생명을 보호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며 "일부 상임이사국이 1945년 부여된 거부권을 남용하면서, 안보리는 분쟁 앞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엔에서 안보리에 대한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논의하고 있음을 주지시키면서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포함한 모든 유엔 회원국이 전 세계 어린이를 위해 더 나은 안전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반 전 총장이 유엔 안보리 회의장에 직접 참석해 연설한 건 2019년 6월 이후 5년 만이다.
반 총장은 이날 회의 중간 점심시간 메리 로빈슨 전 아일랜드 대통령, 에르네스토 세디요 전 멕시코 대통령, 자이드 라아드 알 후세인 전 유엔 유엔인권최고대표 등 디 엘더스 원로 3명 및 안보리 이사국 대사들 함께 주유엔 한국대표부 1층 반기문홀에서 황준국 주유엔 대사가 주재하는 비공식 오찬 회담에 참석하기도 했다.
한편 황 대사는 이날 안보리 회의 발언에서 "최근 두드러지는 지정학적·군사적 이해관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가 아동보호에 관해서만큼은 단합해 아동 중대 침해 주체들을 규탄하고 압박을 가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동권리규약 당사자이기도 한 북한의 경우 유엔 인원이 상주하지 못한 관계로 이번 연례 보고서에서 다뤄지지 않았지만, 북한 내 아동들은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안보리 공개토의는 한국이 안보리 의장국으로서 유엔 사무국 요청을 받아 주재했다.
지난 13일 사무총장 연례 보고서 발간과 연계한 것으로, 보고서에는 유엔이 검증한 26개 우려 상황(situation of concerns) 내 아동 중대 침해 사례를 담았다고 한국 유엔대표부는 설명했다. 별도로 부속서에는 관련 침해자 이름(75개 국가·비국가 행위자)이 등재됐다.
pa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