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로스페이스 앨리'에 4개 거점 확보…P&W·GE·RR 등에 부품 공급
"5년전 미국 진출 탁월한 결정…업계 최신 동향 실시간 파악·대응"
(체셔·뉴잉턴<미국 코네티컷주>=연합뉴스) 김동규 기자 = 미국 북동부 뉴욕주와 매사추세츠주 사이에 있는 코네티컷주에는 미국 최대 항공엔진 산업 클러스터가 있다.
코네티컷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91번 국도를 따라 수백개의 항공엔진 부품 제조 업체들이 밀집해 있어 이 일대를 '에어로스페이스 앨리'(Aerospace Alley·항공 골목)로도 부른다.
제조업이 쇠락하면서 공급망 등 고민이 깊은 미국에서 여전히 부가가치가 높은 항공엔진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을 이어가는 코네티컷 중심에 한국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진출해있다.
인천공항에서 뉴욕까지 비행 14시간, 뉴욕 JFK공항에서 버스로 2시간 총 16시간을 달리면 나오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HAU)의 체셔 사업장은 한화가 지난 2019년 항공엔진 부품 업체인 이닥(EDAC)을 인수하면서 출범했다.
당시 한화의 이닥 인수는 40년 동안 외국 업체의 라이선스를 활용해 항공엔진을 생산해 온 한화가 항공엔진 부품 사업을 확대하고, 나아가 독자 항공엔진 설계·제작 역량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코네티컷에 확보한 4개 생산 거점을 비롯해 한국 창원과 베트남 하노이 등 사업장에서 생산한 주요 항공엔진 부품을 글로벌 엔진 제조사에 안정적으로 납품하고 있다.
한화는 진입장벽이 높은 항공기 엔진 제조 시장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 '국제공동개발(RSP) 글로벌 파트너'의 위상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달 25일 방문한 HAU 체셔·뉴잉턴 사업장에서는 보호안경을 쓴 직원들이 공장 내 생산 구역에서 자신이 맡은 항공엔진 부품 제작에 집중하고 있었다.
'공장 방문'이라는 말에 컨베이어 벨트식 공장을 떠올렸으나 현장에서는 각자 작업 구역에서 선반·정밀기계 공정을 진행하는 숙련 기술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강력한 출력을 뿜어내는 항공엔진은 미세하고 정밀한 설계·제작 기술이 필요하다. 제품에 작은 틈새나 불량이 있다면 엔진이 높은 출력을 내는 과정에서 고온·고압을 견디지 못하면서 위험한 상황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2만6천454㎡ 규모의 체셔 사업장에는 280여명의 직원이 중소형 엔진 케이스 등 정밀 고정체와 엔진 조립을 위한 정밀 공구를 생산하고 있다.
네이트 미나미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미국법인 사업장장은 세계 3대 항공엔진 제조사 모두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하늘을 날고 있는 거의 모든 상업용 항공기 엔진에 한화가 만든 부품이 장착돼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공군 기지에서 F-35를 정비하는 정비사들이 엔진 수리에 사용하는 다양한 공구들도 대부분 이곳에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체셔 사업장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뉴잉턴 사업장에서는 100여명의 숙련공이 엔진 팬에서 빨아들인 공기를 압축시키는 부품인 'IBR'과 '디스크'(Disk) 제작에 한창이었다.
IBR과 디스크는 공기를 회전력으로 압축시켜 부피를 작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선반 공정, 밀링 공정, 플라스마 코팅을 포함한 특수 공정, 표면 검사 등 과정을 거치며 일부 부품의 경우 가공 과정에서 섭씨 1천200도가 넘는 열처리 공정도 진행한다.
이렇게 해서 완성된 IBR·디스크는 프랫&휘트니(P&W) 등 엔진 제조사로 납품돼 조립 과정을 거쳐 완제품으로 거듭나 항공기에 장착돼 비행기를 띄운다.
현장 안내를 맡은 타이슨 샌드퀴스트 디렉터는 "뉴잉턴 사업장에서는 밀링, 선반 등 생산설비 15개를 이용해 연간 IBR 1천400개, 디스크 1천개를 생산하고 있는데, 앞으로 추가 투자를 통해 장비 8대를 더 투입해 생산량을 IBR 2천200개, 디스크 1천개로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HAU의 주력인 체셔·뉴잉턴 사업장 외에도 4천400㎡ 규모의 글래스톤베리 사업장에서는 60여명의 직원이 대형 엔진 케이스 등을 생산하고 있고, 이스트윈저 사업장(7천700㎡)에서는 50여명의 직원이 레이저 가공, 용접, 워터 젯(물 분사식) 절단 등 특수 공정을 전문으로 수행하고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HAU 출범 이후 지난해 사상 최대인 2천521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5년 만에 매출이 약 20% 성장했다고 밝혔다.
HAU 관계자는 "지금 돌아보면 5년 전 미국 진출은 탁월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며 "단순한 항공엔진 부품 사업 확장의 의미를 넘어 P&W 등 글로벌 항공엔진 제조·부품 업체가 밀집한 코네티컷 생태계의 일원으로 참여해 업계의 최신 기술·사업 동향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이날 HAU 체셔 사업장에는 코네티컷주 정부 및 의회 관계자 등이 찾아 코네티컷 에어로스페이스 앨리의 성공 사례에 관해 설명했다.
이들은 코네티컷주 정부가 역내 주요 항공 기업의 유출을 막기 위해 항공산업 재투자법을 제정, 항공 기업이 지역에서 1억달러 이상을 재투자하는 경우 대규모 세액 공제 혜택을 주고 있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새로운 설비 도입 시 최대 10만달러의 운영 자금을 지원하는 바우처 프로그램을 통해 지난해 총 106개 기업이 혜택을 누리고, 바우처 지원액의 약 4배의 투자가 다시 이뤄지는 등 항공산업 생태계가 살아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대 80만달러의 전력 지원금 지급, 산학 협력을 통한 인력 매칭 지원 등의 정책도 소개했다.
이런 노력을 통해 코네티컷주의 항공엔진 제조업은 2022년 기준 연간 66억달러(약 9조1천억원)의 지역생산(GDP)을 창출하고 약 1만5천500개의 일자리를 만들어낸 것으로 나타났다.
폴 라이보 코네티컷주 제조업책임자(CMO)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항공엔진의 25%가 코네티컷에서 생산된다"며 "코네티컷주는 제조업을 지원하는 9개의 기금을 운용하고 있으며 100명 이하 소규모 기업도 최대 25만달러의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리즈 리네한 코네티컷주 하원의원은 "코네티컷의 에어로스페이스 앨리는 사실 정부가 만든 것이 아니라 업계가 협업과 협력을 원해 요구한 결과 조성된 것"이라며 "이곳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성장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는 등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dkki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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