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반 헝가리 총리, 새로운 우파 정치그룹 선언
유럽의회 3위 ECR은 친EU 노선으로 틀어 차별화
(베를린·브뤼셀=연합뉴스) 김계연 정빛나 특파원 = 이달 중순 제10대 유럽의회 개원을 앞두고 우파 계열을 중심으로 정치그룹(교섭단체) 재편·결성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우파 세력의 '대세론'이 확인되긴 했지만, 핵심 현안을 둘러싼 노선 차이에 '같은 듯 다른' 우파 세력이 난립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1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에 따르면 각 정치그룹은 오는 16일 의회 개원 전까지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 따른 소속 정당과 의원 명부를 등록해야 한다.
유럽의회는 국적이 아닌 정치 성향·이념이 맞는 각국 정당이 모여 형성한 정치그룹이 교섭단체 역할을 한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정치그룹마다 전략적으로 이합집산하면서 참여 정당이 일부 변동되곤 한다.
최소 7개 회원국에서 의원 23명이 모이면 새 정치그룹을 만들 수 있다. 제9대 의회에서는 정치그룹이 7개였다.
올해 최대 관심사는 유럽의회 선거에서 약진한 유럽 각국의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움직임이다.
기존 유럽의회 구도에 가장 먼저 도전장을 내민 건 오르반 빅토르 헝가리 총리다.
헝가리 민족주의 성향 피데스(Fidesz)당을 이끄는 오르반 총리는 전날 오스트리아 극우 성향 자유당(FPO), 체코 긍정당(ANO)과 '유럽을 위한 애국자'(Patriots for Europe)라는 이름의 정치그룹 결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세 정당은 지난달 유럽의회 선거에서 총합 24석을 차지했다.
세 정당은 EU의 기득권 정치인들이 전쟁과 이민·침체를 가져왔다고 주장하며 불법 이민을 막고 친환경 정책을 되돌려 EU 정책에서 국가 주권을 지키겠다고 주장했다. 반EU 노선을 분명히 한 셈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과 대러시아 제재에도 회의적인 입장이다.
새 정치동맹 결성 발표 하루 만에 포르투갈 극우 정당 체가(Chega)는 합류를 선언했다고 유로뉴스가 전했다. 체가당은 유럽의회 선거에서 2석을 확보한 정당이다.
이로써 '유럽을 위한 애국자' 그룹은 이제 3개 정당만 더 합류하면 교섭단체 자격 요건을 갖출 수 있게 된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잠재적 합류 가능성이 있는 정당 중 하나로 정체성과민주주의(ID)에서 퇴출당한 극우 독일대안당(AfD)을 꼽는다.
AfD는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이탈리아형제들(FdI), 마린 르펜 의원이 이끄는 프랑스 국민연합(RN)과 거리를 두면서 오르반 총리의 새 정치동맹에 참여할 뜻을 내비쳤다.
멜로니 총리와 르펜 의원은 각각 기존 정치그룹인 유럽보수와개혁(ECR)과 ID 소속이다.
알리스 바이델 AfD 공동대표는 지난달 29∼30일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세금을 채무국에 나눠주는 건 독일의 이익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우리 국가재산이 폰데어라이엔(EU 집행위원장)과 멜로니를 위해 낭비되는 걸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ECR과 ID의 정치지형이 전반적으로 변하고 있어 다른 정당과 협력할 새 기회가 열려 있다"고 말했다.
아직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은 폴란드 법과정의당(PiS) 역시 오르반 총리 주도 반EU 정치그룹에 합류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새롭게 구성될 유럽의회에서 3위 정치그룹으로 등극한 ECR의 영향력은 한층 커질 것으로 보인다.
ECR은 이탈리아 유럽의회 선거에서 멜로니 총리가 이끄는 FdI의 선전으로 720석 중 83석을 확보했다.
멜로니 총리는 2022년 10월 집권 이후 대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 찬성하는 등 친EU, 온건 실용주의로 노선을 변경했다. ID와 다른 극우 세력과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ECR보다 극단으로 평가받는 ID의 경우 적어도 유럽의회 내에서는 기대했던 만큼의 영향력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ID는 프랑스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의 선전에 힘입어 유럽의회 선거에서 5위(58석)를 차지했다.
RN의 압승이 프랑스 국내에서는 조기 총선을 촉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ID 차원에서 보면 AfD 제명으로 시작부터 몸집이 줄어든 데다 원래 ID 소속이던 오스트리아 FPO가 오르반 총리와 연대하기로 하면서 유럽의회 개원 시 실제 의석수는 더 줄어들 전망이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ID의 주축인 RN이 자국에서 표를 확보하기 위해 일부 과격한 견해를 '완화'하는 과정에서 FPO의 이탈 사례처럼 다른 ID 소속 정당들과 서서히 균열을 보였다고 해석했다.
RN은 프랑스 조기 총선 결과 1당을 차지해 여소야대가 되면 유럽의회 내 ID 입지와는 별개로 EU 27개국을 대표하는 이사회 의사 결정 과정에서 EU 차원의 정책 추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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