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필리핀 강경 대치에 자성 목소리?…"위기관리 필요성" 부각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중국이 남중국해 분쟁 국제화로 점점 어려운 처지로 빠져들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일 보도했다.
필리핀과의 대표적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 '세컨드 토머스 암초'(중국명 런아이자오·필리핀명 아융인) 대치 사태로 중국이 국제사회의 우려·비판·분노를 자아내면서 중국의 기존 '남중국해 해법'조차 위험에 처하고 있다는 것이다.
남중국해 영유권을 주장해온 중국은 필리핀·베트남 등과는 분쟁과 대화를 병행하는 한편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과는 2002년부터 해양행동강령 제정으로 분쟁 해결을 모색해왔으나, 최근 이 같은 이중 접근에 차질이 생겼다고 SCMP는 짚었다.
특히 2022년 6월 집권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필리핀 대통령이 친중 성향의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과는 달리 중국과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각을 세우면서 중국 처지가 곤란해지는 양상이다.
필리핀은 1999년 세컨드 토머스 암초에 좌초한 자국 군함 수호를 명분으로 해병대원을 상주시키고 물자를 보급해왔으나 중국이 최근 수개월째 필리핀 보급선에 물대포를 발사하고 선박 충돌로 접근을 차단하자 필리핀이 강력하게 저항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돼왔다.
근래 유럽, 아시아 국가들은 남중국해 문제를 빌미로 미국의 대(對) 중국 압박에 초점을 맞춘 인도태평양 전략에 속속 가세하고 남중국해에 군함을 파견해 군사 훈련과 순찰 활동을 강화하는 등 중국 견제에 나선 형국이다.
실제 G7(주요 7개국) 이탈리아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정상들은 지난달 14일 중국과 필리핀의 세컨드 토머스 암초 충돌사태를 겨냥해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강압적이고 위협적인 활동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어 같은 달 18일 미 국무부도 "중국의 무책임한 행동"을 비난하면서, 미국은 1951년 체결된 조약에 따라 필리핀을 방어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경고해 눈길을 끌었다.
미국은 그동안 남중국해가 공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항행의 자유'를 명분으로 자국 군함과 항공모함을 기동시키는 수준이었으나, 이젠 필리핀과의 동맹 조약에 따라 유사시 미군을 개입시키겠다고 입장 변화를 보이는 것이다.
필리핀이 미국 이외에 유럽연합(EU), 일본, 호주, 인도 등과 안보 협력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익명을 요구한 중국 사회과학원 선임연구원은 "베이징 당국으로서는 보고 싶지 않겠지만 남중국해 문제의 국제화가 진행 중"이라면서 "이는 중국에 닥친 새로운 현실"이라고 짚었다.
이 연구원은 "필리핀이 중국에 맞서기 위해 외부 강대국에 개입을 구애하고 미국이 남중국해 문제의 국제화를 주도하고 있다"면서 "이제는 부상하는 강대국(중국)과 기존 강대국(미국) 간 경쟁 양상"이라고 덧붙였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국제평화안보 전문가 나타샤 쿠르트는 "남중국해의 불안정한 상황은 냉전 형식의 미중 대결 맥락에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중국은 남중국해에 U자 형태로 '남해 9단선'(南海九段線)을 긋고 이 안의 약 90%에 대해 영유권을 주장해 인도네시아와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아세안 국가들과 다퉈왔다.
2016년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이 같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국제법상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지만, 중국은 이를 수용하지 않은 채 남중국해 장악을 위해 군사적 행동을 서슴지 않아 왔다.
루시오 브란코 피트로 '아시아-태평양 번영의 길 재단' 선임연구원은 "중국의 이런 접근 방식은 국제사회로부터 큰 반발에 직면한 상태"라고 분석했다.
중국으로서는 남중국해 분쟁이 우크라이나전쟁과 연관돼 거론되는 점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라고 SCMP는 전했다.
실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지난달 3일 필리핀을 처음으로 방문해 마르코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서구 사회에 남중국해 문제가 더 부각됐다.
이 자리에서 마르코스 대통령이 남중국해 평화·안정·번영 비전이 중국에 의해 훼손되고 있으며 "필리핀의 주권과 영토를 침해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다.
이와 관련해 젤렌스키 대통령은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그의 필리핀 방문이 중국의 위협에 맞서는 국가들과의 협력 강화를 꾀한다는 신호로 비친다는 점에서 중국이 곤혹스러운 처지가 된 것이다.
이를 두고 중국 국무원 고문인 스인훙 인민대 국제관계학과 교수는 "중국 정부가 그동안 젤렌스키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비판한 적은 없지만, 이번에 필리핀을 방문한 데 대해선 매우 화가 났을 것"이라고 짚었다.
이런 가운데 중국 내에서는 남중국해 문제로 중국이 의도치 않은 위험에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이 때문에 위기관리의 필요성과 함께 중국과 분쟁 당사국 간 군 핫라인 구축 주문이 나오고 있다고 SCMP는 전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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