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미숙의 집수다] 시장 과열 부추기는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지정

입력 2024-07-05 09:57  

[서미숙의 집수다] 시장 과열 부추기는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지정
분당 아파트값 최고 3억원 오르고 거래도 급증…선도지구 경쟁 후끈
공사비 급등에 추가분담금 공포…중동신도시 3억∼5억원 추정 "집값 순준"
평가기준 놓고 잡음도…전문가 "재건축 정치적 접근 말고 속도전 재고해야"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매물은 거의 다 들어가고 6월 한 달간 아파트값은 2억∼3억원 이상 올랐어요. 선도지구 지정이 달려 있다 보니 주민 재건축 동의율도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분당신도시 A공인중개사)
"추가분담금 때문에 재건축이 가능할지 모르겠어요. 집주인들은 일단 선도지구 호재에 호가를 올리려고 하는데 거래가 활발하진 않습니다." (일산신도시 B공인중개사)
지난달 25일 1기 신도시 지방자치단체가 정부 안을 토대로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 사업에 대한 공모 지침을 공개하면서 선도지구 지정 경쟁이 본격적으로 달아올랐다.
이에 따라 분당 등 일부 지역은 아파트값이 단기에 수억원씩 뛰는 등 과열 양상을 보인다.
그러나 벌써 선도지구 지정 기준을 놓고 갈등 조짐도 보이고, 일부는 추가분담금 문제로 재건축이 쉽지 않다는 분위기여서 사업 추진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 거래량 급증한 분당, 연일 역대 최고가 경신…다른 신도시와 온도차
1기 신도시에서 가장 많은 최대 1만2천가구의 선도지구 지정이 예고된 분당은 최근 재건축 기대감에 호가가 단기 급등하고 있다.
집을 팔려고 내놨던 집주인들이 선도지구 지정 여부를 지켜보겠다며 상당수 매물을 거둬들였고, 계약이 성사되는 것들은 연일 역대 최고가를 경신 중이다.
분당 서현동 시범단지에서 통합재건축을 추진 중인 삼성한신·한양아파트도 마찬가지다.
삼성한신보다 상대적으로 저평가됐던 한양아파트 전용면적 164㎡는 지난 5월 말까지 17억원대에 거래가 이뤄지다 선도지구 공모 지침 발표를 앞둔 6월 중순 역대 최고가인 20억원에 계약서를 썼다.
이 아파트는 현재 시세가 2억∼3억원 더 올라 22억∼23억원에 매물이 나온다.
서현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한양이 삼성한신보다 가격이 낮았는데 이번에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면서 선도지구 지정 기대감에 호가가 급등하고 있다"며 "중소형은 물건이 없고, 대형은 집주인이 '부르는 게 값'인데도 매수자들이 따라온다"고 말했다.
분당구 이매동 이매청구 전용 84㎡는 6월 초 15억8천700만원에 팔린 뒤 한 달 만에 호가가 최고 17억원으로 1억원 이상 올랐다.
이매동의 한 중개사무소 대표는 "분당 아파트값이 이렇게 가파르게 오르는 것은 십수년 만에 처음인 것 같다"며 "선도지구 방침이 공개된 후 청구와 함께 통합 재건축을 추진하는 성지아파트도 불과 며칠 만에 5천만∼1억원씩 호가가 오른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분당 외 다른 신도시도 집주인들이 재건축 기대감에 호가를 올리고 있지만 분당과는 온도차를 보인다.
일산신도시 강촌마을의 한 공인중개사는 "선도지구 기대감으로 5월∼6월 초에 급매물이 소진된 후 최근 한 달간 호가는 5천만∼1억원 정도 오른 것 같은데 매수자들은 여전히 급매물 위주로 찾는다"며 "분당에 비하면 상당히 조용한 편"이라고 말했다.
평촌의 한 공인중개사도 "평균 용적률이 200%로 높아서 추가분담금에 대한 걱정이 많다"며 "선도지구 지정 기대감으로 집주인들이 호가는 높이려고 하지만 과열 분위기는 없다"고 말했다.
분당은 가격만큼 거래량 증가 폭도 두드러진 모습이다.
연합뉴스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분당의 5월 계약 건수는 총 361건으로 4월(241건) 대비 50% 가까이 증가한 데 이어 6월 계약분은 신고 기한이 이달 말까지로 한 달 가까이 남아 있는데도 벌써 413건에 달하며 5월 거래량을 뛰어넘었다.
일산신도시 5월 거래량(219건)이 4월(205건) 대비 6.8% 증가하고, 6월 거래량도 아직 189건에 그친 것과 대비된다.



◇ 중동신도시 중소형 추가분담금 3억∼5억원…"배보다 배꼽이 더 커"
신도시 지자체의 선도지구 지정 평가 기준이 공개되고, 단지 간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평가 기준과 관련한 잡음도 커지고 있다.
지난달 29일 성남시가 개최한 선도지구 공모 지침 주민 설명회에서는 성남시가 가장 큰 배점이 걸린 주민 동의율에서 상가 동의율을 제외하기로 한 것에 대한 불만이 쏟아졌다.
상가를 배제하면 상가가 많은 특정 단지의 선도지구 지정 가능성이 커진다며 특혜 논란이 제기된 것이다.
안양시는 최근 주민 대상 설명회에서 평촌신도시에서 최대 750%의 용적률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역세권 고밀개발을 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기부채납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주민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이 때문에 지자체별로 선도지구 최종 공모 지침을 확정하고 9월 공모, 11월 선정 절차를 거치며 주민과 지방자치단체 간 적잖은 진통이 예상된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선도지구 지정 이후 후폭풍을 우려한다.
과열 경쟁 속 선도지구에서 탈락한 단지는 재건축 일정이 밀리면서 실망 매물이 나오고 가격 조정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정부는 선도지구 지정 이후에도 매년 후속 재건축 단지를 선정한다고 하지만, 분당만 해도 최대 1만2천가구 지정 후 뾰족한 이주대책도 없는 상황에서 추가 단지의 재건축이 원활히 진행될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선도지구에 뽑힌 단지들은 수익성을 걱정해야 한다.
최근 건설 공사비가 급등한 가운데 현재 아파트값이 높은 분당을 제외한 다른 신도시들은 추가분담금이 사업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정비업계는 5개 신도시 중 아파트값이 가장 높은 분당의 경우 판교신도시 인근 단지의 일반분양가를 3.3㎡당 5천만원까지 올릴 경우 조합원 추가분담금을 1억∼2억원 선으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분당 내에서도 시세가 낮은 곳이나, 현재 아파트값이 3.3㎡당 2천만원대에 그치고 평균 용적률도 높은 다른 신도시는 사업성이 낮아 추가분담금이 클 것으로 예상한다.
실제 하나감정평가법인이 부천 중동신도시에서 선도지구 신청을 준비 중인 한 통합재건축 단지의 사업성을 분석한 결과, 공사비를 3.3㎡당 800만원만 잡아도 조합원당 3억∼5억원의 추가분담금이 발생했다.
이 아파트 전용면적 41㎡의 경우 종전 자산가격이 2억7천만원 선인데 전용 45㎡에 입주한다고 가정할 경우 3억원의 추가분담금이 발생했다. 현재 집값보다도 높은 추가분담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전용 84㎡도 동일 주택형 입주를 가정할 경우 종전 자산가격(5억8천500만원)에 육박하는 5억4천500만원의 추가분담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나감정평가법인 오학우 평가사는 "같은 분당 내에서도 주변 시세에 따라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미 기존 용적률이 200% 이상인 평촌·산본·중동신도시는 앞으로 집값이 올라 일반분양가가 뒷받침되거나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책이 뒤따르지 않는 한 재건축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노후도시재정비 특별법을 두고 사실상 '분당 특별법'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J&K도시정비 백준 대표는 "주거 쾌적성을 고려하면 용적률을 마냥 높일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사업성을 개선을 위해선 지자체의 기부채납 비용을 줄여야 하는데, 이 경우 교통·편의시설 등 도시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준공 후 부과될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부담금은 사업 추진의 또 다른 걸림돌이다.
기존 용적률이 높아 리모델링 추진 단지가 많았던 평촌과 산본 등지에서는 리모델링이냐, 재건축이냐를 놓고 벌어지는 주민 갈등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 무리한 속도전 경계론…"신도시 재건축 정치적 접근 말아야"
전문가들은 신도시 재건축과 관련해 무리한 속도전을 경계한다.
현실적으로 아직 분양도 못한 3기 신도시 물량도 많은데 재건축이 쉽지 않은 단지까지 선도지구 지정 경쟁으로 가격을 부추겨놓고 추후 재건축이 안될 경우 가격 거품과 사회적 혼란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다.
익명을 원한 한 부동산 전문가는 "서울시가 중점적으로 키우는 신속통합기획 재건축 단지도 공사비 급등과 높은 기부채납 문제로 수익성이 없어 사업 추진이 지지부진한데, 이제 갓 30년 된 신도시의 재건축을 정부가 나서 부추기는 것은 난센스"라며 "추진위원회 깃발을 꽂고도 최소 10년, 길면 20년 걸리는 것이 재건축인데, 불과 3년 뒤인 2027년에 착공을 하겠다는 목표도 무리수"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는 신도시 주민들 사이에도 나온다.
분당 이매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분당 신도시는 최근까지도 노후한 승강기를 교체하는 등 대수선을 진행한 곳이 많은데 멀쩡한 아파트에 당장 재건축을 하라니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는 원주민들도 많다"며 "집주인 입장에서 선도지구 호재로 집값이 오르니 나쁠 것은 없지만 실제 사업 진행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말했다.
한양대 도시공학과 이창무 교수는 현재 신도시 재건축은 수요자의 필요성이 아니라 '정치적 욕심'으로 접근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각 신도시마다 집값이나 사업성 등 처한 상황이 다른 만큼 차별화해서 접근해야 하는데 중앙정부가 무리하게 재건축을 부추기면서 과거 뉴타운의 실패를 되풀이할까 봐 염려된다"며 "노후화되기 시작한 신도시 재정비 방안을 고민하는 것은 맞지만, 인구 축소기에 서울 외곽에 서울 중심지보다도 높은 용적률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는 게 맞는 지,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클 지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sms@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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